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예고한대로 28일 시행한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27일 한국을 수출 관리상의 우대 대상인 백색국가(그룹A)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시행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주도하는 세코 경산상은 이날 각의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엄격화 정책을 조용히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한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하는 일본 기업들은 3년 단위로 1번 심사를 받으면 개별 허가를 안 받아도 되는 ‘일반 포괄 허가’를 거쳤다. 하지만 이번 조치에 따라 앞으로는 3개월 정도 걸리는 개별 허가를 받거나 ‘일반 포괄 허가’보다 훨씬 까다로운 ‘특별 일반 포괄 허가’를 받아야 한다. 비전략물자에 대해서도 군사 전용 가능성이 있는 품목에 대해 ‘캐치올(상황 허가·모든 품목 규제) 제도’가 적용된다. 제도 적용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규제 강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지난달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핵심 품목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 데 이어 제2탄으로 백색국가에서 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2일 각의에서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지난 7일 공포돼 공포 후 21일 후인 28일부터 발효하게 돼 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조치에 대해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보복조치가 아니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세코 경산상은 “우대조치를 철회하는 것이지 금수조치가 아니다”며서 “일·한 관계에 영향을 주겠다는 의도는 없으며 대항(보복)조치도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역시 수출무역관리령 시행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글로벌 공급망’을 교란한 것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번 조치의 시행은 이낙연 총리가 전날 일본의 부당한 조치가 원상회복되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검토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에 대해 일본 정부가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보인다.
세코 경제상은 “수출무역관리령 시행은 군사정보에 관한 정부 간 협정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라며 “두 사안을 관련짓는 것은 이해할 수 없으며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고노 다로 외무상 역시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총리의 발언에 대해 “지소미아와 수출 관리는 별개”라면서 “한국 측이 현명한 대응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조치를 단행한 후 당분간 한국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실제 운용 과정에서 한국의 숨통을 조이는 전략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정부가 관세 인상, 송금 규제 등 추가 보복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일본 산업계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비판적인 여론도 상당해서 신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베 신조 총리는 전날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폐막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또다시 비난했다. NHK 등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한·일 관계 악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국이 지소미아의 종료를 통고하는 등 국가와 국가의 신뢰 관계를 훼손하는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에 대한 위반을 방치하고 있다. 우선은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해 가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반(反)자유무역주의 행태를 반복하면서도 이날 자유무역을 강조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였다.
우리 외교부는 아베 총리가 “한국이 국가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한 것에 대해 강력 반발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아베 총리의) 주장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일본이야말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위배되고 자국이 의장국을 하면서 채택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선언문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방적인 경제보복을 지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부당한 경제보복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