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못 간 ‘지소미아 종료 재검토’ 카드

입력 2019-08-27 16:12
이낙연 국무총리가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국무총리가 27일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원상회복하고 우리는 지소미아 종료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할 경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일본과 다시 맺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 총리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지소미아가 종료하는 11월 23일까지 약 3개월의 기간이 남아 있다”며 “양국이 진정한 자세로 대화하길 바란다”고 말하며 한·일 지소미아 종료 재검토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일본은 작정한 듯 강경 대응 기조를 밝히면서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재검토 카드를 무색케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26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한·일 지소미아 종료를 통고하는 등 국가와 국가의 신뢰 관계를 훼손하는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 측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위반을 방치하고 있다”며 “우선은 국가와 국가의 약속을 지키도록 요구해 가겠다”고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한국 정부가 외교적 해법을 거듭 시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셈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일 지소미아 종료 재검토와 관련해 “여러 기술적 사항 있을 것”이라며 “지금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2016년 11월 23일 서명한 한·일 지소미아의 21개 조항에는 ‘협정 재체결’이나 ‘종료 통보 철회’에 대한 내용은 없다. ‘한·일 지소미아는 1년간 유효하며, 어느 한 쪽이 협정 종료 의사를 90일 전 서면통보하지 않는 한 자동연장된다’는 조항만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협정 규정으로만 보면 우리 정부가 종료 통보를 이미 일본 측에 했고 협정 연장은 이뤄지지 않게 된 것”이라면서도 “양국 간 합의만 된다면 협정을 원상복구하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협정은 국가 간 조약에 해당되는 ‘합의’이기 때문에 양국이 다시 합의만 한다면 한·일 지소미아 종료 철회나 재체결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잇따라 한·일 지소미아 종료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자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재검토 의사를 밝힌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한·일 관계는 당분간 악화일로를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일본이 대화 여지를 일축하면서 지소미아 종료 카드는 반나절도 채 안 돼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됐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28일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이 총리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도 수출무역관리령을 28일부터 시행한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