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에 실탄 경고 사격까지…中 ‘동란시 무력개입’

입력 2019-08-26 16:52
시위대에 총구 겨눈 홍콩 경찰. 로이터연합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 과정에서 시위대에게 쫒기던 경찰이 실탄 경고사격까지 하는 등 홍콩 사태가 한층 격화되고 있다. 시위 현장에 화염병과 최루탄, 물대포까지 등장하면서 이미 ‘비폭력’ 분위기는 물건너갔다. 중국은 다시 덩샤오핑의 어록까지 거론하며 무력진압 가능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올해 중국의 최대 행사인 신중국 수립 70주년(10월 1일)을 앞두고 중국 정부가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지 주목된다.

2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전날 저녁 8시쯤 시위대와 충돌을 빚던 경찰이 권총을 꺼내 허공에 실탄을 쏘는 경고사격을 하고 총구를 시위대를 향해 겨누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6월초부터 시작된 홍콩 시위에서 경찰이 실탄을 발사한 것은 처음이다.

경찰관 10여명은 시위대가 중국 본토인 출신 소유로 추정되는 마작장의 유리 등을 부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하지만 흥분한 시위대가 각목 등을 휘두르며 공격하자 수적 열세인 경찰은 쫒기기 시작했다. 쫒기던 경찰관들 가운데 1명은 바리케이트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곧이어 1발의 총성이 들리고 쫒기던 경찰관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던 경찰관은 “시위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한 경찰이 권총을 공중으로 발사했다”고 말했다. 쫒기는 과정에서 다친 경찰관 5명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와 경찰 등 모두 3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시위대 36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테니스 라켓으로 최루탄 쳐내는 시위자.

시위가 격화하자 중국은 무력사용을 경고하고 나섰다.
관영 신화통신은 25일 밤 시론을 통해 덩샤오핑은 일찍이 “홍콩에서 동란이 일어나면 중앙정부가 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홍콩에 대한 개입은 중앙정부의 권한일 뿐만 아니라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홍콩 사태가 악화하면 인민해방군을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통신은 홍콩 시위에서는 ‘광복 홍콩, 시대 혁명’ ‘홍콩 독립’ 같은 구호까지 나왔다면서 이는 홍콩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색깔혁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는 절대 내버려 둬서는 안 되며 법에 따라 징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리아 탐 전국인민대표회의 기본법위원회 부의장은 24일 선전의 한 세미나에서 “홍콩은 혼란에 빠져 있고, 중앙정부는 당연히 개입할 수 있다”며 “인민해방군 홍콩 주둔군은 허수아비가 아니며, 홍콩의 혼란을 멈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매체들은 홍콩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이 미국 비정부기구(NGO)인 미국 국립민주주의기금(NED)의 지원을 받아 왔다며 ‘미국 배후론’도 집중 부각시켰다.

인민일보 해외판은 26일 NED가 홍콩 인권 조사를 위해 1995년부터 2015년까지 1500만 홍콩달러(23억원 상당)를 지원했고, 산하 기관을 통해 홍콩 반대파 조직에 모두 395만 달러를 지원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NED는 NGO 조직이지만, 미국 국회 및 정보기관과 연계돼 있고, 그간 여러 차례 ‘색깔 혁명’도 NED가 막후에서 개입했다”며 “미국은 홍콩을 혼란하게 하는 반대파에게 금전적 지원과 외교적 지지를 제공한다”고 비판했다.

홍콩 시위가 장기화, 과격화하면서 신중국 수립 70주년 행사를 앞둔 시진핑 지도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G2로 부상한 중국의 국력과 중국 공산당의 위상을 과시하는 계기로 이번 행사를 준비해왔는데 미·중 무역전쟁뿐 아니라 홍콩 사태까지 터져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받게됐다.

특히 이번 주말에 민간인권전선이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정돼 있는데다, 홍콩 대학생들과 중고생까지 수업거부를 할 예정이어서 홍콩 시위가 건국 70주년인 10월 1일 이후까지 계속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이번 주말 시위가 중국 본토의 무력개입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