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보호주의와 미·중 무역갈등에 따른 비판으로 고립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미·일 무역협정과 옥수수 수입확대 등으로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 지지통신은 26일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따른) 보복관세 대응으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은 재선을 내다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바심을 내게 한다”며 “역풍 속에서 미·일무역협정의 기본합의와 일본의 옥수수 수입 확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구원의 한 수단이 됐다”고 전했다.
지지통신은 이번 G7 회의에서 미국의 무역정책이 도마에 올랐다고 전하며 유럽연합(EU)의 투스크 상임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프랑스 와인에 제재성격의 세금을 매긴다면 EU 전체가 맞서겠다고 경고한 것을 사례로 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IT기업에 프랑스가 디지털세를 부과키로 하자, 프랑스 와인에 세금을 부과할 뜻을 내비쳐왔다.
트럼프의 유일한 편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무역 평화를 원한다며 제재 관세를 내비치며 다른 나라의 양보를 강요하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일정한 거리를 뒀다고 전했다. 이밖에 러시아의 정상회의 재가입이나 이란 핵문제 등에서도 미국과 같은 입장인 참가국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일본은 미국과의 무역협상을 사실상 조기타결하고, 미국 옥수수를 수입 확대하기로 했다. 정작 일본이 요구한 자동차 관세 철폐는 보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내에서는 미국에 ‘퍼주기’를 해줬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일본 정부가 미국에 일방적으로 양보한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약속한 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옥수수를 매우 많이 갖고 있다. 일본은 그 옥수수를 모두 살 것”이라며 “아베 신조 총리와 일본 국민에게 감사하고 싶다. 멋진 딜(합의)이다”라고 말했다. 양 정상의 공동 기자회견은 ‘좋은 일이므로 공동발표를 하고 싶다’는 미국 측의 뜻으로 서둘러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지통신은 “일본에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한편 수입차에 대한 관세를 동결한 합의는 그만큼 자랑할 만한 성과였다”며 “일본의 옥수수 수입 확대 역시 미·중 무역 마찰의 여파로 수출 감소에 시달리는 미국 내 농가 불만 해소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일본 NHK방송은 ‘중국이 수입하지 않는 미국의 옥수수 일본이 삽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 정부는 해충 대책을 위한 조치라고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이 중시하는 미국 농가 대책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도쿄신문은 “일본 측이 협상에서 끈기 없이 양보해 합의까지 도달한 모습”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양보가 눈에 띄는 성과”라고 비판했다.
일본의 대미 무역 양보가 한국과의 외교전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일본이 대(對) 한국 수출규제 강화와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 심사 우대국)에서 한국을 배제하는 등 경제보복을 하자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로 맞섰다.
이에 일본은 대미 여론전에 집중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미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소미아) 파기를 한 건 선을 넘은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산케이신문은 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도 ‘미국이 한국 때문에 화났다’는 취지의 발언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일본 외무성 간부는 “미국이 엄청나게 화가 나 있다. ‘도대체 한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냐’는 전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을 전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