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최근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잇따라 패소하고 있다. 국정원이 정보공개 청구가 있을 때마다 주로 꺼내 든 방패막이는 ‘국가안보’였다. 하지만 법원은 최근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의 민간인 불법사찰 기록 공개 소송과 북한이탈주민의 자필 진술서 공개 소송 2건에서 국가안보를 비공개 사유로 든 국정원의 주장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국정원이 안보를 명분으로 ‘비밀주의’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한계를 명확히 했다는 평가다.
서울고법 행정8부(부장판사 이재영)는 북한이탈주민 출신 A씨가 자필 진술서를 공개하라며 국정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보 비공개 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26일 밝혔다.
A씨는 2007년 탈북한 뒤 국내로 들어와 학력 등 신상정보와 귀순 동기를 자필로 작성해 국정원에 제출했다. 그런데 그가 2017년 간호조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이 응시 자격인데 통일부장관이 발급해 준 확인서에는 중학교 중퇴로 기재돼 있었던 것이다. A씨는 “북한에서 1991년 중·고등학교 6년 과정에 입학해 1997년에 졸업했다”며 통일부에 학력 정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국정원에 제출한 진술서에 고졸 학력 내용이 담긴 것을 떠올려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비공개 처분을 내렸다.
국정원은 재판 과정에서 “A씨의 진술서는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정보의 분석을 목적으로 수집·작성한 정보이므로 관련법에 따라 공개 제외 대상”이라고 했다. 만약 정보공개 대상이 되더라도 안보와 관련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면 비공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2심 재판부는 “고향, 가족사항, 학력 같은 진술서 기재내용만으로는 국가안전보장과 관련된 정보의 분석을 목적으로 수집·작성한 정보라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또 “기밀유지가 필요하다고 볼 만한 내용도 없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박양준)도 지난 16일 곽 전 교육감이 이명박·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정보를 공개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박 부장판사는 “국가정보기관이 수집·작성한 정보가 내용과 상관없이 모두 정보공개 대상에서 제외된다면 정보 수집·작성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없게 돼 불법적인 정보 수집을 용인하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