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외무장관, G7 회담장 ‘깜짝’ 방문…미국과의 거리는 못 좁혀

입력 2019-08-26 10:54 수정 2019-08-26 11:21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왼쪽 흰색 셔츠)이 25일(현지시간) 프랑스 비아리츠 G7 회담장을 방문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오른쪽 두번째)과 장이브 르드리앙 외무장관(오른쪽 세번째)과 면담하고 있다. [자리프 장관 트위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초청으로 G7(주요 7개국) 정상회담장을 깜짝 방문한 이란 외무장관이 “앞으로의 길은 어렵지만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지만 미국과의 거리는 좁히지 못했다. 예정에 없던 이란과 미국 정부 당국자 간의 만남이 성사될 것이란 기대도 이뤄지지 않았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25일(현지시간)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진행되고 있는 G7 회담장을 방문했다. 자리프 장관은 마크롱 대통령과 면담하고, 영국·독일 정부 당국자들과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파기 위기에 대한 해법을 논의한 뒤 돌아갔다. 다만 이란 측은 미국과의 만남에 대해 방문 전부터 선을 그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AP통신에 따르면 한 프랑스 고위관리는 “프랑스가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을 초청했다”며 “핵 프로그램과 관련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리프 장관은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과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3시간가량 면담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마크롱 대통령, 르드리앙 장관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 2장을 공유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위한 이란의 적극적 외교는 계속된다”며 “앞으로의 길은 어렵지만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영국과 독일 측에도 핵합의 유지 노력과 관련한 자국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와 대화한 뒤 비아리츠에 5시간 정도 머문 자리프 장관은 테헤란행 항공편에 올랐다.

한편 이란 외무장관이 G7 회담장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돌자 미국 이란 간에 예정에 없던 대화가 진행될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퍼졌으나 별도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애초 이란 측은 “미국과의 대화는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트위터에 “자리프 장관은 이란과 프랑스 대통령이 논의한 조치에 대해 계속 이야기할 예정”이라면서도 “이번 방문에서 미국 대표단과의 대화는 없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도 이번 깜짝 방문에 대해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는 자리프 장관의 방문에 대해 “할 말 없다”(No comment)며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또 마크롱 대통령이 G7을 대신해 이란과 대화하자는 성명에 서명했느냐는 질문에도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지 않았다. 아니다, 해보지 않았다”며 거듭 부인하고 “우리는 나름대로 대화의 노력을 해보겠지만 사람들이 대화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대화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오찬에서 2시간가량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이란 핵합의 복귀를 설득한 마크롱 대통령은 만찬 자리에서도 다른 G7 정상들과 함께 이란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핵합의 복귀로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 유지를 위해 미국과 이란을 상대로 설득 외교를 벌여왔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내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프랑스는 자리프 장관이 G7 회담장에서 프랑스와 영국·독일 정부 측과 연쇄 접촉을 함으로써 중동의 긴장 완화를 유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자평하는 분위기다.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프랑스 당국자를 인용하며 “(마크롱) 대통령과 자리프의 만남은 긍정적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면담의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마크롱 대통령은 자리프 장관과의 만남에서 미국의 대(對) 이란 원유수출 제재완화를 포함해 이란의 핵합의 준수를 전제조건으로 한 경제적 보상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지난해 5월 이란과 서방 국가들이 맺은 핵합의를 돌연 탈퇴했다. 이후 이란산 원유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등 이란에 대해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한 지 1년이 된 지난 5월, 유럽국가들의 미국발(發) 제재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핵합의 이행축소를 선언했다. 자리프 장관은 “미국의 탈퇴 이후에도 이란은 핵합의를 준수했지만 합의 상대방인 유럽 국가들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