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극우 포퓰리즘’ 연정이 붕괴된 후 의회 내 제1당인 오성운동과 제2당인 민주당이 차기 연립정부 구성을 위해 협상을 진행중이다. 하지만 주세페 콘테 총리의 내각 참여를 놓고 두 당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등 협상 시한인 27일까지 연정에 합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ANSA통신 등 현지 언론이 24일(현지시간) 전했다.
콘테 총리는 지난해 오성운동이 제3당인 동맹과 손을 잡으면서 연정의 조율자로 선택된 인물이다. 반체제정당 오성운동은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를 총리로 밀었지만 극우정당 동맹을 이끄는 마테오 살비니 대표가 강력 반대하자 당원 가운데 콘테를 절충안으로 내세웠다. 변호사 출신인 콘테는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오성운동이 발표한 내각 후보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정치 경험이 없는 신인이었다. 이후 마이오 대표가 연정 내각에서 부총리 겸 노동·복지부 장관을 맡고, 살비니 대표가 부총리 겸 내무부 장관을 맡는 것으로 정리됐다.
지난 14개월간 연정의 얼굴마담이었던 콘테 총리는 동맹이 연정 붕괴를 선언한 뒤인 지난 20일 사임을 발표했다. 하지만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차기 연정 협상 진행 기간 내각을 이끌어달라고 요청해 직위를 유지하고 있다. 오성운동은 콘테 총리가 그동안 균형감 있게 연정을 이끌어온 만큼 정책의 연속성을 위해 유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중도좌파 민주당은 콘테 총리가 물러나지 않으면 새로운 연정 수립 및 정책 전환이 불가능하다며 맞서고 있다.
두 당은 지난 23일 첫 공식협상에서는 “사회 및 환경 문제에서 충분한 합의를 봤다”며 긍정적인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총리 문제와 관련해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사실 두 당이 오랫동안 정책 면에서 ‘견원지간’이었기 때문에 연정 구성에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만약 협상이 깨져 총선으로 갈 경우 시점은 10월 말이나 11월 초 정도로 예상된다.
앞서 마타렐라 대통령은 오성운동과 동맹의 연정 붕괴 이후 이틀간 진행한 정치권 협의를 마무리하면서 “차기 연정 협상 기간은 27일까지”로 못을 박았다. 이어 “새 연정은 소속 정당 간에 정책 합의를 본 후 의회에서 신임을 받아야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언론은 마타렐라 대통령이 차기 연정의 조건으로 2023년까지 3년여의 남은 입법부 임기를 무리 없이 마칠 것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차기 연정이 정책적으로 충돌하지 않고 지속가능해야만 승인하겠다는 뜻이다. 또다시 연정이 붕괴할 경우 이탈리아의 정국 혼란은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성운동과 민주당이 연정 협상을 진행중인 가운데 변수가 등장했다. 연정 파탄의 장본인인 살비니 동맹 대표가 오성운동과의 연정 복구를 조건으로 디 마이오 대표를 총리로 추대할 수 있다면서 오성운동에 손을 내민 것이다. 오성운동과 민주당이 연정을 구성할 경우 내각에서 쫓겨나는 상황에서 최근 지지율이 급격히 빠지자 상황 반전의 카드를 꺼냈다는 분석이다. 동맹은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정당 지지율 1위에 오르는 등 그동안 지지율 고공행진을 바탕으로 조기 총선을 추진했다. 하지만 연정을 파탄내 이탈리아를 위기로 몰았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고개를 숙였다.
현지 정가에서는 일단 오성운동이 민주당과의 연정 협상에 충실할 것으로 보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살비니가 제시한 회유 카드를 받아들여 과거 연정으로의 회귀를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흘러나온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