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전범기를 상징하는 ‘욱일기’ 형상으로 논란이 된 부산 남구 유엔군 참전기념탑이 이번에는 세계평화와 화합의 정신에 위배되는 ‘십자군’ 표기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남구갑 정정복위원장은 25일 “유엔군 참전기녑탑 조성 기념문에 한글과 영문표기 모두 유엔군을 ‘십자군(Crusaders of Justice)’이라 표현한 것은 세계평화 정신에 어긋난 잘못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정 위원장은 실례로 “미국 해병대 항공단 뷰포튼 전투비행대도 50년 동안이나 십자군이라는 부대명칭을 사용하다 중동국가들에 자극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부대 명칭을 철회하고 본래 명칭인 ‘늑대부대’로 개칭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세계 유일의 유엔기념공원이 있고, 세계평화의 상징적인 도시로 주목받고 있는 부산 남구에는 더더욱 어울리지 않는 표현으로 즉시 시정조치와 시민공론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전쟁으로 유태인 대량학살, 십자군 지원병 인신매매, 약탈 등 역사적으로도 부정적 평가가 많다. 그래서 이슬람교도 뿐 아니라 현대 이스라엘이나 유태인들에게도 십자군이라는 명칭은 달가운 표현이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 조지워커부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당시 ‘악의 세계를 제거하기 위해 미국이 벌인 21세기 첫 전쟁은 십자군 전쟁’이라 발표했다가 부시 측근 유태인 정치인들도 그런 명칭을 삼가 해달라고 충고하는 등 미국 내 유태인들도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일대에는 지난 2010년 유엔평화문화특구로 지정된 이후 연간 100만명의 참배객과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이 기념탑이 교통섬으로 되어 있어 출입에 제한을 받고 있기 망정이지 한국전에 참전한 일부 참전국 후손들이 ‘십자군’이란 표현을 봤다면 문제를 제기할 여지가 충분하다.
또한 한국전에 참전한 참전국 중 터키와 태국은 각각 이슬람과 불교가 국교로 ‘정의의 십자군’이란 명칭에 더욱 불편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유엔군은 유엔 평화유지군 또는 국제 연합 평화유지군으로 불리며 이것을 공식 명칭으로 삼으면 된다.
정 위원장은 “세계평화 거점도시로 주목받는 부산 남구가 유엔군 참전기념탑의 전범기 ‘욱일기’ 조형물 논란에 이어 평화와 화합에 거스르는 ‘십자군’ 표기는 조속히 삭제하고, 이번 기회에 기념탑 존치 여부에 대한 시민공론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앞서 정 위원장은 최근 남구 대연동 유엔로터리에 세워진 ‘유엔군 참전기념탑’이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를 연상시킨다고 주장, 논란이 일고 있다.
정 위원장은 부산시의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엔평화문화특구 관문에 있는 유엔군 참전기념탑의 모양이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의 도안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형상”이라며 “진상조사단을 꾸려 욱일기 디자인이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유엔군 참전기념탑에 반영됐는지 여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하늘에서 바라본 기념탑은 둥근 지구본을 중심으로 16개 기둥이 각기 다른 길이로 뻗어져 있는 모습인데, 붉은 태양 주위로 16개 햇살이 퍼지는 문양인 욱일기와 비슷하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설명자료를 통해 “기념탑의 기둥이 16개로 욱일기의 빗살무늬 숫자 16개와 우연히 일치하나 이는 참전 16개국을 상징한다. 기둥의 비대칭성은 대연동에서 진입하는 중심축에 지구본을 놓아 주변 도로에 따라 길이가 달라진 것으로 보이나 작가가 현존하지 않아 확인할 수 없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유엔군 참전기념탑은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을 기리기 위해 고(故) 김찬식(1932~1997) 작가에 의해 1975년 10월 24일 세워졌다. 김 작가는 홍익대 미대 교수를 지냈으며 전쟁기념관 등 각종 기념탑을 많이 남긴 우리나라 조각 1세대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