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디스플레이 화학소재 분야에서 일본 기업의 기술개발(R&D) 지출액은 한국 기업에 비해 무려 40.9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일 반도체·디스플레이 화학소재 기업 405개(한국 287개, 일본 118개)의 R&D 지출액을 분석한 결과, 일본기업은 1개사당 2800만6000달러를 지출해 한국기업(7000달러)보다 40.9배 많았다고 25일 밝혔다.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단행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화학소재 기업들도 조사대상에 포함됐다.
매출 대비 R&D 지출 비중도 차이가 컸다. 반도체·디스플레이 화학소재 부문에서 한국기업은 매출액의 0.1%를 R&D에 지출했고, 일본기업은 1.8%를 지출해 18배 차이가 났다. 기업 1개사당 평균으로 보면 한국은 0.01%, 일본은 1.7%로 170배나 차이를 보였다.
다른 부품·소재에서는 반도체·디스플레이 화학소재만큼 큰 격차를 보이지는 않았다. 11개 부품·소재 부문에서 살펴보면 일본기업의 소재 R&D 지출액은 한국의 1.6배로 조사됐다. 조사대상은 한·일 기업 1만117개(한국 2787개, 일본 7330개)였다. 1차 금속 제품의 R&D 지출은 일본이 5.3배, 섬유는 5.1배, 화합물 및 화학제품은 3.1배 많았다.
소재 외에 부품부문만 살펴보면 한국기업의 R&D 지출액이 더 크게 나타났다. 이는 반도체 등이 포함된 전자부품에서 한국기업의 R&D가 비교적 활발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세계 디램 시장의 72.2%, 낸드 시장의 49.7%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전자부품 기업의 평균 R&D 지출은 일본기업(900만5000달러)보다 8.2배 많았다.
하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부품 부문에서 일본기업의 평균 R&D 지출은 한국기업보다 1.6배 많았다. 전자부품 부문에서도 R&D 지출액의 97%가량을 차지하는 반도체가 빠지면 일본기업의 지출이 3.7배 높게 나타났다. 정밀기기부품도 일본기업의 R&D 지출액이 한국기업에 비해 7.0배 많았고, 수송기계부품 2.3배, 전기장비부품 2.0배 등의 격차를 보였다.
유환익 한경연 혁신성장실장은 “한국의 부품·소재 산업은 반도체 쏠림이 심한 반면 화학이나 정밀부품 등 다른 핵심 소재·부품에서는 갈 길이 멀다”며 “핵심 부품·소재 R&D에 대한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5일 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향후 7년간 소재·부품·장비 R&D에 매년 1조원 이상씩 총 7조8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간 기업의 애로사항으로 지적됐던 환경·노동 규제를 대폭 완화해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을 돕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이달 내에 ‘소재·부품·장비 R&D 종합대책’도 내놓을 방침이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