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의 ‘3000억 달러 중국산에 대한 관세 부과’ 방침에 맞서 중국이 보복관세 카드를 꺼내자 미국은 지체없이 관세폭탄으로 반격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친구라고 부르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적’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양국 무역협상에서 이성은 사라지고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시 주석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이사회 의장을 ‘적(enemy)’이라고 규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나의 유일한 질문은 제이 파월이나 시 주석 중에 누가 우리의 더 큰 적이냐는 것”이라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를 막기 위해 조속한 미·중 무역협상 타결과 경기부양을 위한 통화정책이 시급한데, 시 주석이나 파월 의장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을 ‘적’으로 규정한 것은 중국의 보복조치에서 비롯됐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이날 원유와 대두 등 5078개 품목, 75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대해 9월 1일과 12월 15일부터 각각 5%와 10%의 추가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또 이와 별도로 관세 면제 대상이던 미국산 자동차와 자동차 부품에 대해 추가 관세를 부활시키기로 했다.
이런 조치가 발표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분노의 트윗을 쏟아냈다. 그는 트윗을 통해 “우리는 중국이 필요 없다. 솔직히 중국이 없는게 훨씬 더 나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오랫동안 중국은 무역과 지식재산권 절도, 그리고 훨씬 많은 것으로 미국을 이용해 먹었다”며 “중국이 미국에서 훔쳐 간 막대한 돈은 중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페덱스, 아마존, UPS와 우체국 등 모든 운송업체에 (중국의) 펜타닐 배송을 찾아내고 거부할 것을 명령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트윗을 통해 모두 5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5%포인트씩 인상키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25%로 부과한 2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율은 오는 10월 1일부터 30%로 5%포인트 인상하고, 나머지 3000억 달러 어치에는 9월과 12월 각각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은 750억달러 어치의 미국산 제품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지 말았어야 했다”며 이번 조치가 보복적 성격임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추가관세 방침이 나온지 12시간 만에 시 주석을 적으로 규정하고 보복 관세 방침까지 밝히는 등 특유의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조치로 중국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중국은 항전 의지를 강조했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24일 논평에서 “국가의 핵심 이익과 인민의 근본 이익을 지키려는 중국의 의지는 꺾을 수 없다”며 “미국이 야만적인 수단으로 이익을 취하는 위험한 길로 멀리 갈수록 중국의 반격은 강도가 세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신문은 또 미국 원유가 처음으로 추가 관세 대상에 포함됐다고 거론하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관세로 미국 제조업은 고통을 겪고, 미국산 대두는 가격 우위를 잃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민일보는 25일에도 종성 칼럼에서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 이성적으로 맞서지만, 미국은 관세 몽둥이를 휘두르며 교활하고 졸렬한 행위를 이어가고 있다”며 “중국은 미국의 어떠한 도발에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