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대신 ‘휴대폰 불빛’, 고려대 광장 메웠다

입력 2019-08-23 20:26 수정 2019-09-02 14:38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23일 오후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의 입학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휴대폰 불빛을 들고 있다. 이병주 기자

붉은 촛불이 아닌 하얀색 ‘휴대폰 불빛’이 고려대 광장을 메웠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 중앙광장에서 23일 ‘조국 후보자 딸의 고려대 입학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 촉구’ 집회가 열렸다.

고려대 재학생과 졸업생 약 500여명은 이날 오후 6시20분부터 고려대에 모여 본관으로 행진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학생들은 촛불 대신 휴대폰 후면에 있는 불빛을 켜고 휴대폰을 높이 들었다. 집행부가 안전상의 이유로 촛불을 휴대폰 불빛으로 대체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대학 방학 중인 상황에서도 재학생을 비롯한 졸업생들이 모여들어 중앙광장을 가득 메웠다. 광장에 앉은 이들은 ‘우리는 무얼 믿고 젊음을 걸어야 합니까’ ‘자유, 정의, 진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명백한 진상 규명!’ ‘고대생의 집회 자리 정치세력 물러가라’는 손팻말을 들었다.

고려대 중앙광장에 모여 앉은 고려대 재학생·졸업생들. 이병주 기자

현장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며 집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주최 측은 “우리는 홀로 깨어있는 체하며 학우들을 계몽의 대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아니며, 알량한 영웅 심리에 빠진 채 주목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아니다”라며 “지금 벌어지는 부조리하고 참담한 상황은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라도 나서야 하겠다는 행동의 당위성을 주었다. 조국 교수 딸의 고려대 부정입학 의혹이 제기·증폭되는 상황에 대해 행동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비록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조씨의 대학 입학 과정에 석연찮은 점들이 발견되고 있다”며 “이런 의혹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노력을 통해 정당하게 얻어진 결과가 정의라고 믿으며 힘써 온 우리의 의욕이 꺾이고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이 생길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행부는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모든 외부세력 배제 △학생들을 분노하게 한 조씨의 입학 의혹에 대해서만 진상 규명 요청 △학교에 조씨 입학 당시 심사 대상이 됐던 자료와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 △조씨의 입학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입학 취소처분 요청 등의 요구사항을 밝혔다.

고려대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휴대폰 불빛을 들고 있다. 이병주 기자

참석자들 일부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들은 “진상 규명 촉구한다 입학처는 각성하라” “정치 간섭 배격하고 진상에만 집중하자” “2만 학우 지켜본다 입학처는 명심하라” “개인에게 관심 없다 진실에만 관심 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어진 자유발언에서 집회를 주최한 이일희씨는 “조 후보자 딸의 부정입학 의혹이 나왔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한 학기 동안 같은 수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눈 적 있는 또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그동안 나보다 부유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보면서도 그 사람의 복이고, 능력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다독이고 하루하루 노력해왔다”며 “그런데 그게 사실은 부정한 편법의 결과였다면, 노력이 보상받을 거라 믿으며 살아온 우리의 삶은 무엇이 되느냐. 우리는 대체 무엇에 기대고,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두 번째로 발언한 곽민준씨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 과정은 공정할 것,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다”며 “대통령이 말한 대로 모든 일이 잘 매듭지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집행부는 정치 세력 등의 참여를 막기 위해 집회 현장 곳곳에 명찰과 안전조끼를 착용한 안전요원을 배치하기도 했다. 자유 발언 사이에는 옆 사람과 어깨동무를 하며 고려대 응원가를 합창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집회는 오후 8시50분쯤 끝났다.

박세원 이병주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