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2일 오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여부를 논의했다. 정부에서는 군사적 효용성뿐 아니라 외교적 전략까지 감안해 파기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현재는 지소미아 유지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지소미아란
한·일 지소미아의 정식 명칭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이다. 한·일 간 군사비밀을 교환하는 절차와 교환된 정보 보호와 관리 방법 등을 규정해놓은 것이다. 이를 통해 2급 이하 군사비밀이 교환된다.
한·일 지소미아는 21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군사비밀을 제공받았을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비밀분류와 등급을 표시한다’(제4조), ‘군사비밀을 제공한 상대국의 사전 서면동의 없이 이를 제3자에게 누설, 공개 등을 해서는 안 되고,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다’(제6조) 등이다. 교환된 군사비밀이 분실 또는 훼손됐을 경우 이행해야 할 조치도 규정돼 있다.
이 협정을 맺었다고 해서 정보교환을 반드시 해야 하는 효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교환하는 정보 역시 한·일 양국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돼 있다. 한국은 미국, 캐나다, 프랑스, 러시아, 우크라이나, 스페인, 호주, 영국, 스웨덴, 폴란드, 불가리아, 우즈베키스탄, 그리스, 인도, 헝가리, 요르단, 일본 등 20개 국가와 지소미아를 맺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지소미아는 정보제공 협정이 아니라 보호 협정”이라며 “정보가 오가면 그 정보를 자국의 정보보호 규정 수준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핵·미사일 정보교환
한·일 양국은 그동안 지소미아를 통해 북한 핵·미사일 관련 정보를 공유했다. 정보 교환은 2016년 1건, 2017년 19건, 2018년 2건이었다. 올해에는 7차례 군사정보가 교환됐다. 지난 5월 4일 북한이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를 제외하고 그 이후 7차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보교환이 이뤄진 것이다. 북한판 이스칸데르, 에이태킴스(ATACMS·미국의 전술 지대지미사일) 등으로 추정되는 미사일에 대한 군사정보가 오갔다고 한다. 지금까지 일본과 교환된 군사정보는 모두 군사 2급 비밀이었다.
군 당국은 한·일 지소미아 파기가 우리 군의 대비태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더욱이 지소미아가 파기되더라도 한국 군은 고도화된 정찰 자산을 확보한 미군의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다. 다만 북한 미사일 분석을 위한 정보가 다소 줄어들 수 있다. 북한은 최근 동해 북동쪽을 향해 단거리 미사일을 쐈는데, 한국에선 식별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대한 정보를 일본이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군 탐지자산으로는 북동쪽으로 멀리 날아가는 발사체를 끝까지 추적하기 어렵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미사일이 남쪽으로 날아오지 않는 한 한국 군의 추적·탐지는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특히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떨어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5형’ 등에 대한 정보 교환이 한국 군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일본은 정보수집위성 7기와 이지스함 6척, 탐지거리 1000㎞ 이상인 지상 레이더 4기, E-2C 등 공중조기경보기 17대, 해상초계기 110여대를 비롯한 탐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고위 탈북자 등을 통한 인적정보(휴민트)와 전방 감청장비에서 수집된 한국의 대북 정보에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다.
지소미아가 파기될 경우 신속한 정보 분석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 2014년 12월 29일 체결된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을 통해 북한 핵과 미사일 관련 일본 정보를 미국을 통해 제공받았다. 미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일본의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게 지소미아였다.
최순실 사태 때 속전속결 체결
한국은 1989년 일본 측에 지소미아 체결을 제안했지만 흐지부지됐다. 그 이후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며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가속화하자 한·일 양측은 협정 필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한·일 양국 군 당국은 2011년 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를 진행키로 했다. 이명박정부 임기 후반인 2012년 6월 국무회의에서 지소미아 체결안이 처리됐으나, 밀실 추진 논란으로 협정 체결은 막판에 불발됐다.
한국 정부는 이후 일본과의 지소미아 체결 필요성을 다시 검토했다. 북한이 2016년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20여차례 시험발사를 거듭했으며 4·5차 핵실험을 감행한 데 따른 것이었다. 정부는 2016년 10월 27일 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를 재개키로 결정한 구체적인 협의를 시작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같은 해 11월 23일 비공개 서명식을 통해 협정을 체결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요구가 커지던 때 재추진 27일 만에 체결된 것이었다. 군 소식통은 “미국 측이 오래 전부터 한·일 지소미아 체결 필요성을 제기한 끝에 협정이 맺어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