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총기 규제서 후퇴, “방아쇠 당기는 건 총 아닌 사람. 100번 말해”

입력 2019-08-21 17:10 수정 2019-08-21 17:23

미국에서 연이은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하면서 규제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총기참사의 원인을 또다시 개인의 ‘정신병’ 문제로 치부했다. 총기 참사 직후만 해도 규제 목소리에 힘을 보탰던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 옹호 이익단체인 미국총기협회(NRA)를 만난 후 총기 참사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기자들과 만나 “이미 100번을 말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건 사람이지 총이 아니다”며 “그 사람들은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15일에도 뉴햄프셔 재선 유세장에서 “방아쇠를 당긴 그 사람이 문제다. 정신병원 확충을 심각히 검토하겠다”며 총기 규제 기조에서 후퇴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남겼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NRA 최고경영자인 웨인 라피에어와 통화를 한 당일에 나왔다고 보도했다. 백악관과 라피에어 모두 두 사람 사이 통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 지지자들은 헌법이 부여한 총기 소유권을 강력히 신봉하며 나 역시 그렇다”며 총기 소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그들은 현 상황을 ‘미끄러운 비탈’이라고 부른다”며 “갑자기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황, 우리는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끄러운 비탈’은 작은 변화가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를 뜻하는 용어다. 총기 규제 관련해 변화를 시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과 4일 텍사스주 엘패소의 월마트와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연이틀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최소 31명이 숨지자 총기 구매자에 대한 광범위한 신원조회를 승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총기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백악관 관계자는 이날 WSJ에 “우리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신원조회를 논의하지도 않았고, 논의하고 있지도 않다”며 “백악관은 개인 간 총기 거래가 아닌 상업적 총기 판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불과 며칠만에 총기난사 사고의 원인을 총격범 개인의 문제로 몰아가고, 신원조회 범위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야당인 민주당은 반발하고 있다.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거센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보수주의자, 정치고문, NRA의 압력에 굴복해 국민들의 안전을 저비리고, 총기 로비에만 동조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후퇴는 실망스러울 뿐만 아니라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총기 난사 사건으로 22명이 숨진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위로 방문에 항의하는 한 여성이 "총이 미국의 아이돌인가"라는 의미의 종이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