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계 日위안부 피해자 ‘오헤른’ 별세

입력 2019-08-21 00:03 수정 2019-08-21 00:03
한국과 대만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와 나란히 앉은 얀 루프 오헤른 할머니(오른쪽) EPA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에 납치돼 위안부 피해자가 된 얀 루프 오헤른이 96세 나이로 영면했다.

호주 현지매체 애드버타이저는 오헤른이 지난 19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호주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주 애들에이드에서 임종했다고 20일 보도했다. 1923년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태어난 오헤른은 수녀가 되기 위해 수녀회에서 생활하던 중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군에 납치됐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살이었다. 이후 스미랑시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소에 감금돼 3개월간 성노예로 고초를 겪었다.

전쟁이 끝난 뒤 영국군 장교와 결혼한 오헤른은 1960년 호주로 이주했다. 50년 가까이 피해 사실을 숨겨왔던 그는 지난 1991년 우리나라의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데에 용기를 얻어 이듬해 호주 언론에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 발표했다. 2차 대전 당시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 사실을 증언한 유럽인은 오헤른이 최초였다. 그는 같은 해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전후 보상 국제청문회에도 참석해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2007년에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배경이 된 미국 하원 청문회에 고 김군자 할머니, 이용수 할머니와 함께 출석해 일본군 위안부 참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호주 멜버른, 시드니 등지에서 고 장점돌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평화·인권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호주 정부는 지난 2002년 오헤른에게 최고 영예인 국민 훈장을 수여했다.

호주 검찰 당국은 “침묵을 깨고 전세계에 자신의 고통을 밝혔던 오헤른의 비상한 능력을 존경해왔다”며 “그의 생존기는 그 자체로 힘과 용기에 대한 입증이다. 호주 뿐 아니라 전세계가 그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헤른의 자서전 ‘50년의 침묵’은 6개 언어로 번역됐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