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 노재팬 깃발소동 … 시민 항의가 2775만원 낭비 막았다

입력 2019-08-21 00:15

서울 중구청의 ‘노 재팬’ 깃발 소동이 벌어진 지 2주가 지났다. 시민들의 적절한 개입 덕에 사건은 해프닝으로 조기 마무리됐지만 당시 제기됐던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았다. 중구는 깃발 소동으로 세금을 얼마나 쓴 걸까. 지금 철거된 깃발은 어디로 갔을까. 당시 수많은 네티즌들이 제기했던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중구청에 문의해 답을 찾아냈다.

국민일보는 20일 정보공개를 통해 중구청으로부터 ‘태극기·보이콧 재팬 가로기 계시 계획’을 확보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중구청은 애초 이 사업에 예산 3000만원을 책정했고 이중 약 225만원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225만원은 깃발 제작 및 설치·철거에 든 총 비용이다. 구체적으로는 ▲태극기와 현수기(깃발) 제작 비용 1172만원 ▲설치 및 철거 비용 1758만원 ▲여유 예산 70만원이었다. 예산 출처는 모두 구비였다.

하지만 이중 실제 사용된 예산은 225만원였다. 중구청이 지난 5일 언론에 ‘노 재팬’ 깃발 게시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배포하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쳐 애초 계획했던 깃발 제작 규모를 1172개에서 50개로 줄이고 게시 규모도 축소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작 비용은 90만원, 설치 및 철거 비용도 부가세를 포함해 135만 5000원으로 줄어들었다. 이렇게 제작·설치·철거에 실제 들어간 예산은 225만 5000원이었다. 딱 6시간 게시됐던 ‘노 재팬’ 깃발 소동에 든 총 비용이다.

이 돈도 아깝긴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더 낭비될 뻔했던 2775만원을 아낀 것이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항의 덕분이었다.

서양호 중구청장 페이스북 캡쳐

그렇게 회수된 50기의 깃발과 태극기는 지금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중구청 설명에 따르면 청사 내에 잘 보관돼있다고 한다.

중구청 관계자는 국민일보에 “회수한 태극기와 깃발은 잘 정리해서 청사 내에 보관하고 있다. 추후 활용 계획은 정해지지 않았다. 민원을 수습하면서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며 “종종 깃발을 달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판매하거나 무상으로 제공하지는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구에서 4년간 생활한 성모(24)씨는 “큰 금액은 아니지만 세금을 불매운동으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에게 썼다면 더 좋을 뻔했다”며 “중구청이 활용계획이 없기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겠나. 긍정적으로 볼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앞서 중구청은 일본제품 불매운동 열기가 뜨겁던 지난 5일 ‘노(NO) 보이콧 재팬(BOYCOTT JAPAN)/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이른바 ‘노 재팬’ 깃발을 도심에 게시하겠다고 발표했다. 퇴계로, 을지로, 태평로, 동호로, 청계천로 등 22개 길에 ‘노 재팬’ 깃발과 태극기를 각각 1172개씩 게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자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민원 전화가 구청으로 쏟아졌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막아달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이에 대해 서양호 중구청장은 “구청은 왜 안 되나”라며 이튿날인 6일 50개소에 깃발 게시를 강행했다가 시민들의 비판에 6시간 만에 결국 철거했다.

연합뉴스

박준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