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먹다 만 과자부터 시든 꽃, 하물며 남이 버린 쓰레기마저 쓸모 있을 거라 여긴다. 남들이 보기에는 쓰레기 더미지만 이들에게는 보물창고다.
지난 6일 찾아간 서울 노원구의 서모(53)씨 집도 마찬가지였다. 17평 남짓한 서씨의 집은 통행 자체가 어려웠다. 집 안에 쌓아놓은 쓰레기는 금방 무너져 내릴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였다. 쓰레기들에선 악취가 심하게 났고 벌레들이 보였다. 집에 들어간 지 10초 만에 바지에 바퀴벌레가 툭 떨어졌다. 이웃들은 서씨 집 주위를 오갈 때 마스크를 꼈다. 인내가 바닥을 칠 때면 닫힌 현관문을 향해 “제발 사람답게 살자”고 고성을 질러댔다.
집주인 서씨는 ‘저장강박증’이었다. 이상하고 기괴한 증상을 보이는 정신질환인 저장강박증. 하지만 뜻밖에도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흔한 질병이라고 한다. 저장강박증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지난 12일 박종석 구로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을 만났다.
-저장강박증이란 무엇인가요?
“정신장애 4대 질환인 강박증의 한 증상입니다. 강박증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선정한 10대 질환에 해당할 정도로 흔하지만 생각보다 일상생활에 영향을 많이 주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의지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생각에 사로잡혀 불안해지고 그것을 없애려는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을 통칭합니다. 이 과정에서 통제가 어려운 고집이 생깁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생각이 떠올라 불안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특정 행동이나 생각을 되풀이하게 되죠.”
-왜 발병하는지 궁금합니다
“외로움의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독거인에게서 주로 발병합니다. 사회에서 고립되고, 사람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하지 못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어떤 사람들에서 주로 발병하나요?
“인구의 3%에서 발병할 정도로 상당히 흔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엘리트 집단에서 많이 발병했습니다. 학력은 높지만 경제적으로 어렵고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경우입니다. 이밖에 사회적으로 고립됐거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이들에게 나타납니다. 대부분 사회적으로 위축돼 있었습니다.”
-발병시기 및 초기 증상은?
“청소년기에 발병합니다. 사춘기를 거치며 자신감이 결여될 때 유발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격적 문제로 생각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예민하고 까탈스럽다고 이해하는 겁니다. 초기에는 쌓여있는 물건의 수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아 발견이 어렵습니다.”
-병의 특징 같은 게 있나요?
“기본적으로 반복성을 보입니다. 누구도, 심지어 자신마저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납니다. 불안함을 줄이려는 노력인데, 큰 의미에서 불안장애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물건을 모을 때는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쓰레기를 모으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치판단 기능이 떨어진 상태기 때문에 반짝이고 화려하면 그것을 귀중한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건 어떤 심리일까요?
“쓸모 없는 쓰레기들을 모으지만 쉽게 버리지 못하는 심리에는 외로움이 큰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쓰레기장에 있는 물건이라도 언젠가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인데요. 모든 물건이 쓸모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로움을 물건으로 채우려고 하는 거죠. 애정 결핍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물건을 저장하면서 불안함을 상쇄시키려고 합니다.”
-위험한 병이라고 할 수 있나요?
“쓰레기로 인한 공간적 불편함뿐 아니라 위생적으로도 치명적입니다. 악취, 벌레, 곰팡이, 습기로 인한 내과적 호흡기질환이나 폐질환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문제입니다. 필연적으로 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으로 발전될 수 있습니다. 전두엽 기능도 지속적으로 떨어지게 되고 만성적인 불안축적 때문에 예민성을 넘어 날카롭고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게 됩니다. 극단적으로 악화되면 치매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쓰레기를 모으는 것 외에 저장강박증으로 의심할 수 있는 다른 행동도 있나요?
“현대인에게서 자주 등장하는 증상은 전자기기에 저장된 데이터를 지우지 않는 것 입니다.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이나 휴대폰 속 사진을 지우는 것이 꺼려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항상 하드디스크가 꽉 차있지만 지우려고 하면 불안함을 느끼는 겁니다. 저장강박증 위험군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치료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발병 원인을 이해해야 합니다. 과학적으로 의사판단과 가치판단을 조절하는 전두엽 기능의 소실, 세로토닌 분비의 불균형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강제로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설득하고 기다려주고 인내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의사소통이 어려운 상태가 많습니다. 고집도 굉장히 강합니다. 대부분 10대 후반 무렵 발병해 수십년 고착화된 후에야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처음에는 약물에 대한 치료가 우선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이 돌보며 치료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가족의 돌봄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장강박증으로 1차적인 피해를 보는 사람은 가족입니다. 가족이 환자를 병원에 데리고 올 정도면 갈등이 깊어진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폭력성을 동반할 경우 행정적인 지원을 받아 단기 입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2주에서 한 달 동안 입원을 시킨 후 그 사이 집을 치우는 것이 좋습니다. 그동안 의료진은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도록 인지치료를 해야 합니다. 새로운 인식체계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기존의 왜곡된 고집을 점진적으로 소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주변에 저장강박증 환자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응급상황인 것을 인지하고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됩니다. 고집을 꺾으려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도움이 안 됩니다. 반감만 사게 됩니다. 쓰레기일지라도 환자에게는 보물과 같습니다.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을 빼앗아간다는 느낌을 받으면 굉장한 폭력성을 보일 수 있습니다. 저장강박증은 ‘내 물건을 버리면 큰일 난다’는 불안으로 인한 증상입니다. 불안을 자극해서는 안 됩니다.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문가와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을 위해 사회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가족 이외에 정부 차원의 행정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환자가 정기적으로 감정을 교류하고, 불안함을 해소할 수 있는 구조적인 체계가 만들어지면 좋겠습니다. 근본적으로 왜 이런 쓸모없는 물건들에 집착하게 됐는지 심리적인 뿌리를 이해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박민지 기자, 영상=최민석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