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질환 등을 유발한 가습기살균제가 군대에서 12년가량 사용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까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부대만 공군 기본군사훈련단과 국군 양주병원 등을 포함해 최소 12곳이다. 군은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벌어진 후 해당 제품의 사용 실태를 확인하거나 피해 상황을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19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군이 2000년부터 2011년까지 가습기살균제를 구매해 사용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조위는 국방전자조달시스템과 병사들의 참고인 진술 등을 종합한 결과, 육·해·공군 및 국방부 산하 부대·기관 12곳에서 800개가 넘는 가습기살균제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육군 20사단과 공군 제8전투비행단과 같은 일선 부대는 물론 군 병원인 국군 수도병원과 국군 양주병원에서도 가습기살균제가 사용됐다.
특조위에 따르면 공군 기본군사훈련단은 유해한 것으로 판정된 애경산업의 ‘가습기메이트’를 2008년 10월 390개 구매해 썼다. 수도병원과 양주병원도 같은 제품을 각각 290개(2007~2010년), 112개(2009~2011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군 교육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 국방과학연구소 등은 2007년부터 5년여간 국방전자조달시스템을 통해 가습기살균제를 조달했다.
과거 군에서 복무했던 병사들도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고 특조위에 증언했다. 2000~2002년 육군 제20사단에서 복무했던 김모(39)씨는 겨울철 생활관 안에서 가습기살균제를 썼으며 소속 병사 60여명이 노출됐다고 전했다. 특조위는 이처럼 가습기살균제가 주로 병사들의 생활공간에서 사용됐다고 했다.
군 시절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도 공개됐다. 특조위에 따르면 이모 장병은 2010년 양주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병실 내에서 사용된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됐다. 폐와 무관한 질환으로 입원했던 이씨는 그 해 폐 조직이 굳는 폐 섬유화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2016년 정부에 피해 신고를 했지만 폐 손상 4단계(관련성 거의 없음) 판정을 받는 데 그쳤다.
특조위는 가습기살균제가 일선 군부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군 보급품 전문가인 전직 육군 대령 A씨는 “가습기살균제 같은 생활용품을 군의 공식 조달시스템으로 마련하는 경우는 극소수”라며 “각 부대의 운영비로 사서 쓴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군 내 가습기살균제 피해가 더 클 수 있다는 의미다.
2011년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터진 후 군은 문제 제품을 회수했지만, 사용 실태나 피해 여부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최예용 특조위 부위원장은 “군이 지금이라도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가 있었는지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조위는 오는 27일부터 이틀간 서울시청에서 진행되는 가습기살균제 참사 진상규명에 관한 청문회에 참석하는 군 관계자에게 군 내 가습기살균제 사용에 관한 조사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