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쪽방의 참변’ - 폐지 주우며 생활하던 노인 등 3명 화재로 숨져

입력 2019-08-19 11:40 수정 2019-08-19 16:28
19일 오전 4시쯤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의 한 여인숙에서 불이 나 소방관들이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불로 잠을 자고 있던 노인 3명이 숨졌다. 전북소방본부 제공.

19일 새벽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의 한 여인숙에서 불이 나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유지하던 노인 등 3명이 숨졌다.

전북경찰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쯤 이 여인숙에서 원인 모를 불이 났다. 불은 전체 건물 76㎡를 모두 태운 채 2시간만에 진화됐지만, 이 화재로 각자 방에서 잠을 자던 70∼80대 여성 2명과 남성 1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가운데 A씨(83. 여)는 관리인이고, B씨(76)와 80대로 추정되는 여성은 폐지와 고철 등을 주우며 ‘달방(한 달씩 월세를 내며 투숙하는 방)’생활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한 주민은 "여인숙 앞에는 항상 폐지나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며 "(투숙하던 노인들이) 매일 새벽에 일어나 폐지를 주우러 다녔다"고 말했다.

19일 오전 4시쯤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의 한 여인숙에서 불이 나 출동한 소방관계자들이 잔불을 제거하고 있다. 이날 화재로 잠을 자던 노인 3명이 숨졌다. 뉴시스 사진.

참변이 발생한 여인숙은 6.6㎡(약 2평) 정도의 방 11개로 구성된 이른바 ‘쪽방 여인숙’이다. 1972년에 사용 승인된 ‘목조-슬라브’ 구조로 지은 지 48년이 됐다.

한 목격자는 “새벽에 자는데 ‘펑’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가스통이 폭발한 줄 알고 나와 보니 골목에 있는 여인숙이 불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신고가 접수된 지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지만, 화마의 기세가 강했다고 설명했다. 소방관들은 펌프차 등 장비 30대와 인력 86명을 동원해 2시간 만에 불길을 잡았으나 건물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여인숙에는 장기투숙객 10명이 등록돼 있으나, 불이 났을 당시 이 곳에는 3명만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다 쓴 부탄가스 더미가 폭발하면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소방 관계자는 “새벽에 갑자기 불이 난데다 건물이 낡아 노인들이 대피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나머지 1명에 대한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불이 난 시간대의 주변 CC(폐쇄회로)TV를 확인한 결과 여인숙을 오고 간 인물이 없는 점으로 미뤄 방화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하고 목격자 등을 상대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또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린 추가 매몰자가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굴착기와 인명 구조견 등을 동원해 현장을 수색하고 있다.

전주=김용권 기자 y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