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본격적으로 가짜뉴스 대응에 나서고 있다. 아직 청와대 차원의 구체적인 대응안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들어 다섯 차례나 공식석상에서 ‘가짜뉴스’의 해악을 언급한 만큼 정부 차원에서 조만간 대책을 마련해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18일 청와대에 따르면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직원들은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통일부,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방부 등 4개 부처 대변인실을 방문해 언론 대응 방안 실태를 조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공직사회 실태 점검은 반부패비서관실의 고유하고 일상적인 업무수행”이라며 “그 일환으로 반부패비서관실에서 오보대응 실태점검을 한 것이다. 이례적인 일이 절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이미 예전에도 민정수석실에서 몇 차례 부처를 상대로 언론 대응 관련 조사를 벌인걸로 안다. 청와대 차원에서 부처들이 가짜 뉴스나 왜곡 보도에 손을 놓고 있다고 보고 대응에 나섰다는 건 틀린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다만 청와대 내부에선 가짜뉴스의 폐해가 심각하며 관련 대책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가짜뉴스 척결에 대해선 대통령의 의지가 가장 강한 것 같다”며 “아직까지 확정된 가짜뉴스 대책은 없지만 대통령이 계속해서 가짜뉴스의 문제점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시그널”이라고 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미·중 무역갈등에 일본의 경제보복까지 더해져 우리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다”며 “정부는 근거 없는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 갈등이 심각한 와중에 가짜뉴스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창립 55주년 기념식에 보낸 영상 축사에서 “가짜뉴스가 넘쳐 나는 세상에서 ‘진실’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올 들어 공식석상에서 다섯 차례나 가짜뉴스의 해악을 지적했다.
청와대는 향후 한상혁 방통위원장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면 가짜뉴스 근절을 위한 구체적인 밑그림을 짤 계획이다. 다만 방통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우려도 청와대 내부에서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인지수사를 하는 곳이 아니라 신고가 들어와야 조사를 벌일 수 있다. 결국 가짜뉴스와 관련해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게 많지 않다”며 “명예훼손의 경우 현행법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가짜뉴스 카테고리로 처벌 방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다른 나라의 가짜뉴스 대책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특히 독일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독일은 지난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미디어 기업이 증오가 담긴 언급을 신속히 제거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독일 정부가 만든 법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나치 이데올로기를 포함해 증오가 담긴 표현 등 금지된 내용을 24시간 이내에 삭제하지 않으면 최대 5000만 유로(약 679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다만 독일의 경우를 한국에 접목시키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독일의 경우 가짜뉴스가 아니라 히틀러나 인종 차별 발언 등을 금지하고 있다. 굳이 유튜브나 페이스북 뿐 아니라 사회 모든 영역에서 혐오 발언을 없애자는 조치”라며 “꼭 가짜뉴스를 규제하자는 게 아니라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인사들은 관련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 스스로 가짜뉴스를 없애기 위한 홍보 활동에 돌입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1일 ’평화가 경제다’는 제목의 글을 시작으로 일주일에 한 번꼴로 현 정부 경제 성과를 알리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노 실장은 경제수석실 등 청와대 정책 라인에 수시로 ‘통계 분석 의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또 국민소득, 가계소득 증가 등 긍정적 지표를 그래프로 정리한 A4 용지 크기 포스터도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다. 노 실장은 국민소통수석실을 거치지 않고 직접 실장실 차원에서 페이스북에 올릴 그래픽을 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비서실장실 한쪽 벽면에 각종 그래프가 인쇄된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 있고, 그 수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며 “비서실장실을 찾은 인사들이 꼭 경제부처 사무실 같다고 평가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노 실장은 새 포스터가 나올 때마다 번호를 매겨 비서관급 이상 참모들에게도 회의 때마다 배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비서실장실에서 다른 비서관실에 수시로 통계를 요청하면서 행정관 급을 중심으로 업무 가중을 호소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