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직지원정대원 10년 만에 영면

입력 2019-08-18 09:45 수정 2019-08-18 10:01

“마지막 명령이다. 이제 가족의 품에서 편안히 쉬면서 10년의 긴 등반을 마무리하라.”

박연수 전 직지원정대 대장이 지난 1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고인쇄박물관에 마련된 추모 조형물 앞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10년 전 히말라야산 안나푸르나 히운출리(해발 6441m) 북벽 아래에서 실종됐던 직지원정대 소속 고(故) 민준영(당시 36세)·박종성(당시 42세) 대원의 유골이 이날 고향 청주에 도착했다. 두 대원의 가족, 직지원정대·충북산악회 관계자, 각계각층 인사 및 시민 등 100여명이 이들을 위한 추모식에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

네팔 포카라 병원에서 두 대원의 신원을 확인하고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박 전 대장은 “두 대원이 빙하 속에서 10년 동안 함께 있었던 것으로 네팔 현지 경찰이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어 “빙하가 녹으면서 두 대원 시신이 미끄러져 산 아래로 이동하게 됐다”며 “현지 주민이 이를 발견했는데 조금만 늦었다면 금방 훼손돼 고국으로 영영 돌아오지 못했을 것 같다”고 전했다.

박종성 대원의 형 종훈씨는 “우리 가족은 오늘 정말 반갑고 기쁜 만남을 이뤘다”며 “기약 없는 기다림 끝에 행복한 만남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 민준영 대원의 동생 규형씨는 “참 긴 등반이었고, 10년간 기다리면서 힘들었는데 기적적으로 형이 돌아와서 기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SNS에 남긴 글에서 “유가족과 동료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두 대원이 가족의 품에서 따뜻하게 잠들길 바란다”며 “오직 자신들의 힘으로 등반하여 우리 금속활자본 직지를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두 대원은 진정한 알피니스트였다”고 추모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은 두 대원의 도전정신과 도전으로 알리고자 했던 직지 모두 매우 자랑스럽게 기억할 것”이라며 “히말라야에는 아직 우리 산악인 100여 명이 잠들어 있다. 우리는 두 분 대원이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것 처럼 언제나 실종 산악인들의 귀향을 염원할 것”이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 산악인들이 가슴에 품은 열정은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가지게 한다”며 “ 민준영, 박종성 대원, 잘 돌아오셨다”고 했다.

직지원정대는 2006년 충북산악구조대원을 중심으로 해외원정등반을 통해 현존하는 금속활자 인쇄본 중 가장 오래된 직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자 결성된 등반대다.

고인들은 2009년 9월 직지원정대의 일원으로 히운출리 북벽의 신루트인 '직지 루트' 개척에 나섰다가 그달 25일 오전 5시30분 해발 5400m 지점에서 베이스캠프와 마지막으로 교신하고 난 뒤 실종됐다. 직지원정대는 실종 1년여 전인 2008년 6월 히말라야 6235m급 무명봉에 올라 히말라야에서는 유일하게 한글 이름을 가진 ‘직지봉’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같은 해 7월 27일 이 봉우리의 이름을 직지봉으로 승인했다.

청주=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