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판 ‘허드슨 강의 기적’... 동체착륙으로 233명 전원 무사

입력 2019-08-16 11:39



지난 15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동남쪽에 있는 쥬코프 공항. 우랄 에어라인의 에어버스 A321 여객기가 이륙했다. 크림반도 도시 심페로폴로 향한 여객기엔 승객 226명과 승무원 7명 등 모두 233명이 타고 있었다. 힘차게 이륙한 여객기는 곧 갈매기 떼를 만났다. 갈매기들은 여객기의 두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엔진에서 불이 났고, 다른 엔진도 고장 났다. 다미르 유수포프 기장(41)은 동체 착륙을 결정했다. 그는 착륙 기어를 내리지 않은 채 활주로에서 약 1km 떨어진 옥수수밭에 여객기를 무사히 착륙시켰다. 기장의 현명한 판단 덕분엔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고, 23명이 가벼운 부상을 당했을 뿐이었다. ‘쥬코프 옥수수밭의 기적’이었다.

유수포프 기장은 일약 영웅으로 떠올랐다. 동체 착륙 후 병원에서 간단한 치료를 받은 그는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엔진 한 개가 고장 난 것을 보고 회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다른 엔진도 고장을 일으킨 사실을 알고는 동체 착륙할 결심을 했다”며 “동체 착륙이 성공한 뒤 승객들을 모두 대피시킨 뒤 밖으로 나가 여객기 상태를 살펴봤다. 그런 다음 조종석으로 돌아가 아내에게 전화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람들이 나를 영웅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승객들과 승무원들 그리고 여객기를 구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유수포프 기장은 “조종사 훈련 때 비상시에 동체 착륙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며 “승무원들도 비상 사태에 항상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침착하게 행동했다”고 말했다.

10대 소년인 한 승객은 “이륙한 지 5초 후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5초가 지난 뒤 비행기 오른쪽 엔진에 불이 붙었고, 연기 냄새가 났다”며 “급히 비행기가 동체 착륙했고, 사람들이 밖으로 달려나갔다”고 아찔했던 순간을 전했다.

한 목격자는 “차를 몰고 낙시하러 가는데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었다. 비행기가 옥수수밭으로 내렸고, 연기가 났다. 불길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소방서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판 ‘허드슨 강의 기적’이라고 할 만하다. 2009년 미국 뉴욕을 출발해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으로 향하던 US 에어웨이즈 에어버스 A320기는 새와 충돌해 허드슨 강에 불시착했는데, 기장과 부기장이 여객기를 안전하게 강에 착수시키고 150명의 승객 전원을 구한 바 있다. ‘허드슨 강의 기적’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dpa 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수사위원회는 이 사고와 관련해 범죄 수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연방수사위원회는 항공사 측의 항공안전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러시아 항공교통국은 유수포프 기장의 결정을 지지했다. 교통국 대변인은 “동체 착륙은 올바른 결정이었다”며 “조사는 불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5월 승객과 승무원 78명이 탑승한 러시아 국내선 여객기가 이륙 직후 낙뢰를 맞고 비상 착륙하는 과정에서 불이 나 41명이 숨지는 참사가 발생한 바 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