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레벨’보다 ‘열렙(열심히 레벨 업)’이 어울리는 팀이다. 이전삼기의 경험 속에서 그리핀은 부단히 성장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여름이지만 그리핀의 정규시즌 ‘제자리’는 한결같다. 그리핀은 지난주 열린 ‘2019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LCK)’ 서머 정규 시즌 2라운드 경기에서 강호 젠지, 킹존을 이기고 5주 만에 1위를 탈환했다. 세트득실에서 우위에 있는 그리핀은 어제(16일) 진에어를 이기고 선두 질주를 이어갔다. 18일 예정된 한화생명전에서 매치 승리를 하면 자력으로 결승에 직행한다.
14일 국민일보와 통화한 김대호 감독은 “‘핀트’를 맞추는 데 소요된 패배가 있었다”고 돌아보며 “연승의 시작인 샌드박스전과 그 이후 경기도 맞춰가는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타잔’ 이승용은 지난 11일 킹존전 승리 후 인터뷰에서 “연패 이후 꾸준히 연습하면서 다시 팀적으로 호흡이 잘 맞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 기회를 얻게 됐고, 놓치고 싶지 않다”면서 굳은 결의를 보였다.
늘 완벽해야 하는 부담… 그렇게 성장했다
지난해 여름 처음 LCK 무대를 밟은 그리핀은 ‘돌풍’으로 표현됐다. 겁 없는 새내기의 거침없는 질주에 팬들은 상상의 동물을 떠올리며 ‘어나더 레벨’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하지만 폭발적인 기세는 우승에 닿지 못했다. 우월한 경기력으로 늘 우승 후보 1순위로 거론됐지만, ‘시즌’이라는 큰 그림에 끝내 낙관을 찍지 못했다.
긴 호흡의 리그에서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는 건 매우 어렵고, 복잡한 작업이다. 무엇보다 우직한 관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그리핀은 세 시즌 동안 경험을 쌓으며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장난기 가득했던 10대 후반~20대 초반 선수들은 두 번의 결승전 에서 값진 교훈을 얻었다. 잇따른 준우승으로 실망과 좌절이 뒤섞였지만, 동시에 프로 무대의 무게를 깨닫고 진지함을 얻게 됐다.
최근 국민일보와 만난 김동우 단장은 “마지막에 가서 패하는 모양은 팀에게 정말 큰 대미지다. 실망이 커지면 의욕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두 번 연속으로 그런 경험을 했다”고 돌아봤다. 김 단장은 이러한 역경을 딛고 다시 결승을 향해 가고 있는 선수단의 저력을 칭찬했다. 그는 “과거에는 선수 개개인이 본인 플레이에 집중하고도 좋은 결과가 나와 마냥 그렇게 했던 부분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수들이 ‘내가 실수하면 팀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패할 때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서히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공이 쌓였다”고 전했다.
김대호 감독 또한 “최근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더 진지해지고, 성숙해진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전과 사뭇 다른 신호들
“시즌 막바지에 다시 폼이 올라오면서 단단해지고 있다. 다른 시즌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김동우 단장은 이른 시기에 겪은 부진이 선수들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방심하면 안 된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리핀은 이번 시즌 대회 2년 차를 맞았다. 한때 1승4패로 부진하며 소포모어 징크스(잘 나가던 팀이 2년차에 부진을 겪는 현상)가 아니냐는 평가가 고개를 들었지만, 샌드박스, 젠지, 아프리카 등 상위권 경쟁 중인 팀들을 연달아 꺾으며 그런 우려를 말끔히 불식했다.
그리핀의 상승세는 주머니에서 물건 꺼내듯 간단히 이뤄낸 결과물이 아니다. 선수 개개인의 빼어난 기량은 코칭스태프의 치밀한 전략·전술과 어우러져야 비로소 프로씬에서 돋보일 수 있다. 여기에 오랜 시간 함께한 선수 간 신뢰는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시너지다. 이 외에도 사무국과 팀 관리자들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선수들은 오롯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성적이 안 나올 때도 경기력에 대한 의심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시즌 중반의 패배가 ‘약이 됐다’는 평가가 내부적으로 나왔다. 폼을 서서히 올리면 시즌 마지막에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을 거란 기대다. 이달 초 샌드박스전에서 이긴 뒤 ‘리헨즈’ 손시우는 “(연패 당시에도) 경기력이 나아지는 게 눈에 보였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었다”면서 “경기만 잘하면 다시 올라가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강팀 그리핀’을 이야기할 때 ‘타잔’ 이승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정글을 넘어 협곡 전역을 누비는 이승용의 활약은 우연이 아니다. 세간에 알려진 폭발적인 경기력은 재능과 노력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그리핀 LoL팀 선수들은 솔로 랭크에서 특정 점수 이상을 유지하는 규칙이 있다. 하지만 이승용은 목표치에 이르면 새 계정을 만들어 다시 솔로랭크를 돌려왔다. 그렇게 상위권에 다수의 ‘타잔’이 이름을 올리게 됐다. 끊임없는 정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뉴페이스 ‘도란’ 최현준의 기용은 그리핀의 가장 유의미한 변화다. 최현준은 최근 메타에 적합한 챔피언을 능숙하게 다루며 연속으로 선발 출전하고 있다. 최현준의 잠재력은 팀 내부적으로 높게 평가되고 있다. 근래의 출전은 실전 경험을 쌓을 기회를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세간의 우려와 달리 ‘소드’ 최성원 또한 언제든 출전할 수 있는 기량을 유지 중이다. 최성원은 최근 경기에 출전하지 않아도 팀의 맏형이자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꾸준히 챙기고 있다. 팀 관계자는 ‘폐관 수련’이라는 표현을 쓰며 “‘소드’의 컨디션은 여전히 좋다.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또한 “(최성원이) 과거 결승전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았나”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했다.
김대호 감독이 말하는 그리핀의 팀 철학은 ‘궁극의 경기력’이다. 결승전에서 잇달아 좌절을 맛본 뒤에도 다시금 정상을 향해 내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 여기에 있다. ‘타잔’ 이승용은 지난 11일 킹존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뒤 “계속 하던 대로 하고 있다”면서 “우리 팀은 항상 더 나아지려고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스프링 시즌 손시우는 “감독님께서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적은 경기력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경기력만 나오면 승패는 상관없다’는 말씀을 늘 하신다. 경기력만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고 힘줘 말했다.
김동우 단장은 “선수들이 꾸준히 경험치를 먹고 자라나는 게 보인다”고 했다. 게임에서 경험치를 쌓으면 레벨이 올라간다. 이제 그리핀도 레벨 업을 할 때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