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수치스러운 역사라는 문제 제기에 설치 당시부터 논란에 휩싸였던 대구 중구 순종황제 어가길 동상(사진) 철거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광복절을 전후해 한일 무역전쟁으로 반일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순종 동상 철거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이하 대구지부)는 순종 동상 철거에 대한 시민대토론회 개최를 최근 대구시와 중구에 요구했다고 15일 밝혔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동상 철거를 요구해온 대구지부가 이번 기회에 시민들에게 철거 여부를 묻겠다는 것이다.
순종황제 어가길은 대구 중구가 2013년부터 추진해 2016년 조성을 마무리했다. 수창동과 인교동 일대에 순종황제 동상, 역사가로, 쌈지공원 등을 만들었다. 어가길은 순종황제가 1909년 1월 7~13일 지방 민정시찰을 위해 영친왕, 이토 히로부미 등과 함께 대구·부산·마산을 둘러본 남순행(백성들을 살피기 위한 임금의 행차)을 했던 길이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당시 을사늑약과 군대 해산 등으로 극심한 반일감정이 생겨났고 대구가 항일운동의 거점이 될 것을 두려워 한 일본이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순종을 앞세웠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성 당시부터 반대 목소리가 높았지만 중구는 다크투어리즘(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표방하며 사업을 진행했다.
오홍석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장은 “중구는 낙후된 북성로와 서성로 일대 도시재생과 일제강점기 항일정신을 다크투어리즘으로 개발한다고 했지만 남순행로 조성사업은 역사왜곡과 친일을 부추기는 것”이라며 “대구시와 중구는 순종 동상 철거를 위한 시민대토론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동상 자리는 동학혁명군을 몰살하려고 일본군이 주둔한 곳으로 오히려 동학혁명군, 의병전사자들의 상을 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구청는 철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중구 관계자는 “순종황제 어가길과 동상은 어두운 역사를 되새겨 교훈을 얻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설치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예산 등 여러가지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