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13일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1조6578억원에 달하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이달 중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국가재정법상 300억원 이상 사업은 예타를 거치게 돼 있지만, 소재·부품·장비 관련 R&D(연구·개발) 사업은 ‘긴급 상황’으로 판단해 바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예타를 면제하겠다는 것이다.
당정청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일본 수출규제대응 상황점검 및 대책위원회 1차 회의를 개최했다. 대책위는 일본 수출 규제 대응을 위해 각종 기구가 동시다발적으로 설치되면서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는 만큼, 여러 기구의 소통을 조정하는 ‘관제탑’ 역할을 하기 위해 구성됐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결과 브리핑에서 당정청이 소재·부품 특별법의 전면적인 개편을 장비 분야까지 포함해 이달 말까지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9월 초 국회에 제출될 전망이다. 세제지원의 경우 해외 M&A 법인세 세액공제, 해외전문인력 소득세 세액감면, R&D 목적 공동출자 법인세 세액공제 등을 신속하게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
대책위는 또 일본의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 절차상 우대국) 배제 결정에 따른 업종별 영향 및 대응 상황, 소재·부품 수급 대응, 긴급지원 체제, 피해기업 지원 방안 등을 상시 점검하고 대외 의존형 산업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 100대 품목 조기공급 안정성 확보 및 소재부품 경쟁력 강화 추진상황도 긴밀하게 점검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재정 조기 집행과 규제개혁 이행 여부도 점검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당정청은 다음 달 초부터 한국은행 총재까지 참여하는 범정부 긴급상황점검체계를 가동해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하기로 했다. 조 정책위의장은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뿐 아니라 금융 쪽도 추가 조치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통화 관리를 하는 한은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과 정책위원회도 산업계 인사들을 국회로 초청해 일본 수출 규제 대응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경제연구소,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SK경영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과 중견기업연구원, 중소기업연구원 등 대기업·중소기업 싱크탱크 6곳이 함께 했다. 또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금융위원회 관계자들이 정부 측 인사로 참석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산업계 참석자들은 당정에 정책 개선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안하며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우선 소재·부품·장비 분야에 대한 R&D 지원대상 우선순위의 개선이 필요하고, R&D 지원기업 선정 시 기업 규모·경영 상태·과제 수행 경력 등 기존 중점 내용에서 탈피해 기술력과 인력 등 발전 가능성도 반영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또 글로벌 밸류 체인 역량 강화 및 자생력 제고를 위한 산업 컨소시엄의 추진이 필요하며 소재·부품의 건전한 생태계 조성과 판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수인력 공급과 장학금 지원 등 정부 지원에 대한 요청도 있었다. 이밖에 “정부 출연 연구소와 공공기관, 대학, 대기업에 R&D 테스트 베드 협력 모델을 만들고, 테스트 베드로 테크노파크·창조경제센터의 활용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범부처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위원회의 역할과 위상을 제고해야 한다”는 요청도 있었다.
윤관석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로 타격을 받는 100대 품목에 대해선 조기공급 안정성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다”며 “20대 품목은 1년 내, 80대 품목은 5년 이내에 안정화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또 산업계의 건의사항과 관련한 예산 문제에 대해서는 “예산은 (정부안의 국회 제출) 시간이 왔기 때문에 빨리 협의해야 한다”며 “입법과 규제는 정기국회 과정에서 부처별로 과제를 뽑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주 52시간 제도의 도입 유예와 관련된 논의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와 관련해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관련 이야기가 있었지만, 즉답을 드리는 자리는 아니었다”며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는 양 원장이 지난달 22일부터 국내 주요 기업을 방문하며 진행한 ‘경청 간담회’의 후속 조치 차원에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