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日과 경제 전면전…백색국가 제외 협상 지렛대 되나

입력 2019-08-12 15:22 수정 2019-08-12 15:46
지난 2일 태국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계기로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회의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이 사진 촬영을 위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정부가 12일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구체적인 안을 내놓으면서 양국이 ‘경제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전략물자 수출통제제도는 국제수출통제체제의 기본원칙에 부합하게 운영돼야 한다”며 “국제수출통제체제의 기본원칙에 어긋나게 제도를 운영하고 있거나 부적절한 운영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국가와는 긴밀한 국제공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달 4일 일본의 첫 수출규제가 단행된 뒤 일본을 설득하고 설명하려 노력했지만 양국 간 갈등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일본과 무역 부문에서 공조관계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이 같은 조치를 내놓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전략물자 수출입고시 개정안’은 한국의 백색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내용이 골자다.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 개정안은 지역을 세분화해 일본의 등급을 한 단계 낮추도록 개정된다. 수출지역은 기존의 가, 나 지역에서 가의1, 가의2, 나 지역으로 나누고 일본을 새로 신설된 가의2 지역에 넣었다. 가의1 지역은 4대 국제수출통제체제에 가입한 기존의 백색국가가, 가의2 지역은 수출통제제도를 부적절하게 운용해 가의1에서 제외된 일본과 같은 나라가 들어간다.

한국은 일본이 지난 2일 각의(국무회의)에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가결하기 전까지 양국 간 대화를 성사시키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일본의 전반적인 기조에는 큰 변화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한국의 맞대응 조치가 이뤄지게 됐다. 다만 정부는 이 조치가 국내법이나 국제법 상 적합하게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전략물자수출입고시 개정안의 세부적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의2 지역은 나 지역 수준의 수출통제 규정을 적용한다. 사용자포괄허가의 경우 가의1 지역 국가는 기존 가 지역 규정대로 원칙적으로 허용하지만, 가의2 지역은 동일 구매자에게 2년간 3회 이상 반복 수출하거나 2년 이상 장기 수출계약을 맺어 수출하는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받을 수 있다.

성윤모 장관은 “일본 정부가 협의를 요청하면 한국 정부는 언제, 어디서건 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일본 정부가 이런 한국의 상응조치에 대해 대화를 제안하면 언제든 하겠다는 얘기다. 이는 일본과의 협상 여지를 남긴 것이다. 한국은 협상이 이뤄지면 이날 우리 측 조치를 지렛대로 일본의 경제규제 조치 철회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을 ‘가-2’로 분류하는 데서도 정부의 대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다’와 같이 새로운 항목을 만들지 않고 기존 항목에 번호를 붙인 ‘가-2’에 일본을 넣었기 때문이다. 당초 예상보다 조치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박태성 무역투자실장은 “‘톤 다운’ 여부를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는 것 같다. 다양한 대안을 검토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조치는 국제사회에서 우리가 ‘도덕적 우위’를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동안 정부는 일본의 일방적인 경제규제 조치로 우리가 피해를 보게 됐다고 호소했지만 이제는 양측이 동일한 입장에 섰기 때문이다. 또 일본에서 여러 소재와 부품을 수입하는 우리 기업의 피해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