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조선인 2세인 서경식(68) 일본 도쿄게이자이대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63) 일본 도쿄대 대학원 교수는 2000년 공동으로 책을 펴낸 적이 있다. 제목은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삼인). 책은 일본 우파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일본의 우경화를 파고든 대담집이었다.
그리고 거의 20년이 흘러 최근 국내에는 이들의 새로운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돌베개)가 출간됐다. 2016년부터 이듬해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 두 학자의 대화를 엮은 작품이다. 일본이 왜 군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분석한 내용이 담겼다. 서 교수와 다카하시 교수는 12일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런 대담집을 다시 냈다는 것 자체가 일본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희가 다시 일본 사회의 퇴행을 지적하는 책을 냈다는 것 자체가 일본이 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겁니다. 우리 두 사람이 증인이에요. 나쁜 길로 가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증언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대담집을 펴낸 것이고요.”(서 교수)
“일본의 문제는 정치적인 부분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역사적인 배경과 일본 사회의 사상적인 문제도 두루 알아야 합니다. 저희 책을 꼭 읽어주셨으면 해요.”(다카하시 교수)
‘책임에 대하여’는 일본 사회의 우경화 과정을 살피면서 이 나라가 무슨 이유에서 군국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그려낸다. 위안부 문제에 접근하는 일본의 그릇된 인식과 천황제의 모순 등을 통렬하게 비판한 내용도 주목할 만하다. 두 학자는 일본이 과거 저지른 잘못을 백안시하면서 동북아의 평화를 흔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겨눈 비판의 칼날은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하고 있다. 서 교수는 책의 첫머리에 “(아베 정권 탓에) 민주 정치를 토대에서부터 파괴하는 ‘모럴의 붕괴’가 진행 중”이라고 썼으며, 다카하시 교수는 “(아베 정권의) 중심에는 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역사를 정당화하려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고 적었다.
간담회에서는 “지금의 한국과 일본 관계는 사상 최악”이라는 진단이 이어졌다. 서 교수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화된 나라라는 건 틀린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여전히 천황제를 고수하고 있으며, 이들이 일군 민주화 역시 미국을 비롯한 나라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군국주의 등을 떠받드는) 일본의 본성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악화일로로 치닫는 한국과 일본의 화해는 어떻게 가능할까. 두 사람은 “일본 시민들이 우선 과거 청산 작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미디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일본인들 스스로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이나 위안부 문제 등을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단계의 ‘화해’가 가능할 거예요.”(서 교수)
“아베 정권의 주장이 미디어를 통해 여과 없이 보도되고, 많은 일본인은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어요. 일본의 언론이 현재 상황을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다카하시 교수)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