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가 일본 경제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일본 기업들은 수출규제 조치에 대한 평가를 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베 신조 정권의 눈치를 보며 속앓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교도통신은 12일 일본 내 주요 112개 기업 설문조사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평가’를 묻는 질문에 “모르겠다·말할 수 없다”는 응답이 54%로 가장 많았다고 보도했다. 2곳 중 1곳이 언급을 피한 것이다. 교도통신은 한·일 양국 정부의 대립이 심화하는 가운데 일본 기업들은 수출규제 조치가 초래할 영향을 신중히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드러낸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 규제 이후 현지언론과 산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른 것을 고려하면, 일본 기업들이 한국에 강경한 아베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솔직한 의견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모리타 야스오 모리타화학공업 사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견디고 있지만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고 우려를 토로한 바 있다. 모리타화학공업은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인 고순도 불화수소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납품해왔다. 그는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경우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일본 기업의 점유율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향후 한·일 간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중국이 일본을 대신해 한국으로 출하가 가능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또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로 한국에 대한 수출 절차가 복잡하지면서 부담이 늘어났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개별 수출 심사 때마다 제출해야 할 서류가 늘어나는 등 기업들의 생산 외 업무 부담이 늘어났고, 수출 절차가 복잡해지면서 업무 처리도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교도통신은 한편 이번 조사에서 일본 국내 경기가 ‘완만하게 확장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23%로 지난해 77%에서 급격히 하락했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를 표명하는 등 미·중 무역 갈등 장기화가 예상되고, 오는 10월 소비세 인상(8→10%)에 대한 우려도 일본 기업들이 경기 상황에 대한 신중한 자세를 강화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