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장례 치르고 퇴직금 문제로 연락 온 게 전부였어요. 지금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했습니다.”
서울의료원에서 근무하던 고(故) 서지윤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7개월, 남동생 희철(27)씨는 국민일보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서 간호사의 죽음으로 간호사들 사이에서 관행처럼 이어져 온 직장 내 괴롭힘(일명 ‘태움’)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서울시가 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섰지만 서울의료원의 무성의한 태도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병원 노조, 유가족이 추천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진상대책위는 이달 중 조사 결과와 재발방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에 앞서 지난 7일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희철씨를 만났다. 서 간호사 어머니 최영자(53)씨는 전화로 심경을 전해왔다.
희철씨는 서울의료원이 서 간호사의 죽음을 아직도 개인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는 “누나가 원래부터 우울증을 앓았다거나 약물을 남용했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병원 안팎에서 흘러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 관계자들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여태껏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며 “장례를 치른 후 퇴직금을 처리해야 한다며 연락 온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희철씨는 횡성소방서에서 구조대원으로 일하고 있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왔지만 작은 누나에게 그런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희철씨는 이후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병원 측에 맞서 진실을 밝히는 데 힘이 되고자 서울과 원주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가족이 나서지 않으면 수많은 죽음 중 하나로 그냥 잊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희철씨는 “서울의료원 앞, 광화문 광장, 국회 등 어디든 찾아다녔다”며 “그때마다 병원 사람들이 감시하듯 찾아왔다”고 했다. 다만 서울의료원 관계자는 “원장과 부원장 등이 일이 벌어진 후에 직접 어머님께 찾아가 유감의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남은 가족들의 삶은 회복하기 어려울 만큼 무너졌다. 사회복지사인 어머니 최씨는 둘째 딸과 비슷한 또래만 봐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숨죽여 울었다. 서 간호사의 마지막 모습을 발견한 언니는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최씨는 “지윤이가 가고 우리 가족은 무너졌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들은 내 딸이, 동생이, 누나가 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고통받다 생을 마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 간호사는 5년간 병동에서 일하다 행정부서로 옮긴 지 20일 만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숨지기 일주일 전 최씨에게 “엄마, 나는 태움이 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앞에서 대놓고 헐뜯는데 미치겠어”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최씨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다독여서 돌려보냈던 그때가 미치도록 후회스럽다. 그때 엄마인 내가 잡아줬더라면, 그만두라고 했더라면…”이라고 눈물을 삼켰다.
서 간호사의 가족들은 그래서 진상대책위 발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간호업계의 잘못된 업무 관행이 뿌리 뽑히기를 바라고 있다. 다만 그간 진상대책위 활동이 순탄치만은 않아 얼마나 내실 있는 조사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진상대책위 관계자는 11일 “서울의료원이 조사에 필요한 자료를 내주지 않아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최종 보고서를 보고한 뒤 토론회에서 이를 공개할 방침이다. 여기엔 서 간호사가 당한 괴롭힘을 입증할 증언과 증거들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지윤이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희철씨는 “부실한 결과가 나온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