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예한 갈등을 이어온 한·일 양국이 숨 고르기를 하며 대화를 모색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일 갈등 해소의 입구를 찾기 위한 외교적 소통이 시도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내놓을 메시지와 종전기념일을 맞이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들이 한·일 관계의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조세영 외교부 제1차관은 11일 KBS 1TV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외교 당국, 외교 채널에서는 저희들이 (일본과) 소통과 대화를 긴밀하게 유지를 하고 있다”며 “(일본도) 대화와 외교적인 소통을 통해서 상황을 관리하고 해법을 찾아보자는 그러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앞서 일본 외무성 당국자는 지난 9일 한국 특파원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갖고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제시한 기존 ‘1+1(한·일 기업이 재원을 마련)’ 방안은 해결책이 될 수 없지만, 한국이 해결책을 제시해주면 공동으로 지혜를 모아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 1차관은 이 당국자를 통해 나온 일본 측 입장이 외교적 소통을 통해 해법을 찾자는 것으로 해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9일(현지시간) 한·일 갈등과 관련해“그것은 우리를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한다”며 “한국과 일본은 잘 지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본은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으로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강화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등의 경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한·일 외교당국에서 대화에 관한 메시지가 나오고, 트럼프 대통령까지 거들고 나서면서 대화 재개 가능성이 점쳐지는 것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연장 시한(24일)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발효(28일) 시점 이전까지를 한·일 양국이 외교적 소통과 해법 마련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지난 6월 제시한 ‘1+1’ 방안 외의 카드를 모색, 일본과 협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조 1차관은 “어떤 방안이 있을까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 다각도로 면밀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국 모두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가 나올 수 있는 오는 15일 광복절이 한·일 관계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은 7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 담을 대일 메시지를 고심하고 있다. 이미 마련된 연설문 초안을 놓고 참모들과 의논하며 최종안을 준비하고 있다. 연설에는 극일(克日) 발언이 주를 이루되, 전략적 대응을 위한 수위 조절과 함께 건설적인 한·일 관계에 대한 문 대통령의 구상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종전기념일을 맞이하는 일본에선 아베 총리가 어떤 발언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이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의 위패가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느냐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종문 한신대 일본학과 교수는 “일본이 지난 7일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하고, 28일 정식으로 시행하니 일단은 쉬어가는 기간을 맞이한 것”이라며 “일본이 여러 경로를 통해서 한·일 대화의 입구를 마련하기 위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주 문 대통령이 내놓을 광복절 경축사 메시지가 또 다른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도 “한·일 모두 쿨다운(진정) 하면서 국면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것 같다”며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톤다운을 할지, 전면전으로 계속 나갈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상헌 박세환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