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 방안으로 ‘국제사회 지지’ ‘물밑 타협’ 거론
정부·정치권, 갈등 부추기기보다 봉합 주력 주문
피해 감수하는 ‘서민’ 위해 빨리 매듭지을 필요
“정치문제에 따른 보복으로 무역을 이용한 점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큰 실수를 했다.”
일본에서 20년째 지내고 있는 박상준(54·사진)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교수는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한·일 양국 경제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한 박 교수는 12일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뿌리’가 정치라고 지목했다. 그는 “일본 정치가와 관료 사이에 노골적인 한국 적대감이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며 “여기에 더해 더 이상 한국에 당하지 말자는 여론이 사태를 촉발한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위안부 합의 폐기나 강제징용 배상 문제로 한국에 쌓였던 감정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지향점이 자국의 경제적 상황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번 수출규제 조치로 일본 기업 중 반사이익을 얻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미국·대만의 반도체기업 주가가 오른다고 들었다”며 “이번 조치는 지금까지의 한·일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정치적 목적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일본 정부가 ‘경제’를 보복의 수단으로 내세운 점이 가장 큰 실수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이 정치문제에 대한 보복으로 무역을 이용하는 것을 비판하는 데 (한국 정부가)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독단적 평가는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국제사회와 소통하라는 의미다. 박 교수는 “우리는 늘 우리만의 논리를 듣는다. 국제사회 의견을 구하고 경청해야 한다”며 “일본은 특히 미국·유럽의 여론에 예민하다. 국제사회의 여론이 한국을 지지하면 우리에게 많이 유리하다”고 했다.
박 교수의 말에는 한국 정부와 정치권이 이런 문제들을 한·일 양자 구도로만 해석하는 걸 우려하는 ‘배경’이 담겨 있다. 두 나라가 물러설 수 없는 극한 대치 상황까지 온 이면에는 경제가 아닌 외교적 대립이 자리 잡고 있다. 박 교수는 “국제사회에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면서 일본을 압박하는 한편 물밑에서는 타협안을 의논해야 한다”며 “한·일 양국 정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선을 찾아야 하고 그런 면에서 상호비방은 자중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이어 “장기적으로는 기초 소재·부품 산업 육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믿지만 단기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피해를 입는 이들이 양국의 ‘서민’이라는 점에서도 봉합 움직임은 필요하다. 박 교수는 일본 관련 소규모 자영업자처럼 ‘벙어리 냉가슴 앓는’ 국민의 처지를 정부가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일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료, 청와대나 수상관저 사람들이 경제적 손해를 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의병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왕과 귀족이 후방에 있는 동안 최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게 의병”이라며 “한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불평하지 않고 견디는 분들이 서민”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정부와 정치권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때가 아니라 기업 목소리를 진지하계 경청하고 최대한 외교력을 발휘해 일본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삼성 같은 대기업에도 쓴소리를 했다. 박 교수는 “대기업은 그들을 지키겠다고 서민들이 나선 데 ‘빚진 마음’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관련해선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일본에 압박을 가해 사태를 빨리 매듭짓겠다는 생각으로 해야지, 증오나 혐오를 내세우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지금은 전쟁이나 마찬가지 상황이라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참는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나면 한국도 자기성찰을 해야 한다. 조직이 위기를 겪고 내부를 돌아보는 성찰이 없으면 성숙해지거나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교수는
한국과 일본 경제를 두루 아는 대표적 ‘일본통(通)’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거쳐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99년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에서 근무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국제대에서 강의를 시작했고 2005년부터 와세다에서 교편을 잡았다. 주요 저술·저서로 ‘아베노믹스 이후 일본 시장의 변화와 진출 전략’ ‘불황터널: 진입하는 한국, 탈출하는 일본’ 등이 있다. 이달 중으로 일본이 불황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담은 ‘불황탈출’을 출간할 계획이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