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니치신문 “美 징용배상 해결 문제, 日 입장 지지”

입력 2019-08-11 15:39
미쓰비시중공업 정기 주총이 열린 지난 6월 27일 이 회사 본사가 있는 도쿄 니주바시빌딩 앞에서 한·일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변호인단이 징용 배상을 촉구하는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가운데가 원고 중 한 명인 양금덕 할머니.

미국이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이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에 배치된다는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미 국무부가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이후 일본 주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이 1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뒤 원고 측이 미국 소재의 일본 기업에도 자산 압류를 신청할 것에 대비해 미 국무부와 협의를 진행했다. 이때 일본 측은 미국에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미 국무부가 ‘소송은 무효’라는 의견서를 미국 법원에 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마이니치신문에 “미 국무부가 지난해 말 이전에 ‘일본 주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마이니치신문은 미국이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예외’를 인정할 경우 발생할 일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한일청구권협정의 기초가 된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있는 ‘전쟁 청구권 포기’ 원칙이 이번 예외로 인해 흔들릴 것을 걱정한다는 것이다.

마이니치는 미일 양국이 지난달 고위급 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한 일본의 법적 입장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이달 초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때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을 만나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 2일 방콕 센타라 그랜드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과 회담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기념촬영 후 강 장관과 고노 외무상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2000년대 들어 옛 일본군에 포로로 잡혔던 미국인들이 ‘일본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며 일본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 잇따랐다. 이에 미 국무부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청구권을 포기했다”며 원고 측 청구에 반대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미국 법원도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러한 배경 탓에 미국 정부가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일본 측 논리를 두둔하는 듯하다고 마이니치는 분석했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 영향으로 옛 포로 피해자들이 다시 배상 청구 소송에 나서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일청구권협정은 태평양전쟁 종전 후 패전국인 일본과 연합국 사이에 맺어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당사자가 되지 못해 한일 간 ‘당사자 간 특별약정’으로 체결됐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4조에 ‘한국은 일본과 옛 식민지 간 청구권 문제를 당사자 간 특별약정으로 처리한다’고 규정돼있는 것을 근거로 했다.

그러나 이 협정에 등장하는 청구권 문제의 ‘완전·최종적 해결’ 문항을 둘러싼 해석을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최종판결을 통해 불법 식민지배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개인청구권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이 같은 해석이 협정의 취지에 어긋나는 판결이라 국제법 위반 상태가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인 박재훈(왼쪽부터), 이규매, 오철석 씨가 지난 2월 15일 일본 도쿄(東京) 마루노우치(丸ノ內)에 있는 미쓰비시(三菱)중공업 본사를 방문했다.

마이니치는 “일본 정부가 징용 판결과 관련한 원칙적 주장에서 미국의 이해를 얻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이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가 배상책임을 지도록 하는 등 ‘청구권협정 위반’ 상태의 시정을 계속 요구한다는 방침”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 9일 일본 외무성 관계자가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이 일관되게 말하는 것은 ‘관여는 하지만 중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미국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는 “주권국가인 두 나라가 협의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 입장”이라며 “(미국 내에서) 자신들이 만든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근거해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을 한국이 사실상 다시 쓰려고(rewrite) 하는 게 아니냐는 강한 우려가 있다”고 미국 측 분위기를 전달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