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혁명’ ‘해방’ 구호 반중국 노골화…英 외무 “평화시위 지지” 외교 갈등 심화

입력 2019-08-11 15:37
홍콩 국제공항에서 10일 마스크를 쓴 시위대 수천명이 연좌농성을 벌이는 모습.AP뉴시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철회 요구로 시작된 홍콩 시위가 경찰의 폭력 진압 규탄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다 최근에는 홍콩 해방과 혁명을 요구하는 구호가 등장하는 등 반중국 성향이 강화되고 있다. 시위 방식도 경찰과 정면 충돌을 피하고 시내 곳곳에서 ‘치고빠지기’식 게릴라 시위로 바꾸는 등 장기전 태세를 보이고 있다.

홍콩 시위는 초기에 송환법을 추진하는 캐리람 행정장관에 대한 항의시위로 시작해 경찰의 폭력진압 이후에는 캐리람 장관 사퇴와 폭력진압 책임자 처벌, 체포 시위대 석방 등 5대 조건을 내걸었지만 지금은 그런 주장도 들리지 않는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1일 보도했다.

대신 10일 타이포와 침사추이 등 곳곳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시위대가 외쳤던 구호는 “홍콩을 해방하라: 우리 시대의 혁명”이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앞서 일부 시위대가 지난 3일 오후 홍콩 부두의 국기 게양대에 걸려 있던 오성홍기를 끌어내려 바다에 버리는 일이 벌어졌고, 시위 현장에 미국 성조기가 자주 등장하는 등 반중국 성향이 노골화되고 있다.

또 애초부터 명확한 지도부가 없었던 홍콩 시위대는 경찰의 진압이 강화되자 게릴라 시위로 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날 타이포에서 행진을 마친 시위대는 진압장비를 갖춘 경찰과 잠시 대치하다 충돌없이 물러났으며 소그룹으로 나뉘어 곳곳으로 흩어진뒤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대는 홍콩섬과 카오룽 반도를 잇는 터널 입구 등 곳곳의 통행을 방해하고 미국 성조기를 들거나 경찰을 폭력조직인 ‘삼합회’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경찰은 오후 6시쯤부터 타이와이 지역에서 1000명 가량의 시위대가 해산 명령을 따르지 않자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고, 침사추이 지역에서도 시위대가 경찰서를 포위하자 최루탄을 발사하며 해산을 시도했다. 홍콩 국제공항에서도 검은색 옷을 입은 시위대 수천명이 입국장에 최근 시위 영상을 보여주는 텔레비전을 설치하고, 인쇄물을 나눠주며 이틀째 시위를 벌였다.

오전에는 유모차에 탄 어린이와 노년층 등 가족 단위 참여자들이 완차이에서 애드미럴티까지 행진하며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자”며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했다. 반면 반면 경찰을 지지하는 홍콩 시민 300여명은 경찰서를 격려방문했고, ‘홍콩 푸젠 협회’ 회원 200여명은 친정부 집회를 열기도 했다. 경찰은 11일 홍콩섬 동부와 쌈써이포 지역에서 예고된 집회를 불허했다.

홍콩 항공사 캐세이퍼시픽은 중국 당국의 항의에 따라 홍콩 시위와 관련해 폭동 혐의를 받는 조종사 1명을 비행업무에서 배제했다고 SCMP는 전했다. 이 조종사는 지난달 28일 시위 도중 검거됐다. 중국 민항국은 앞서 캐세이퍼시픽에 대한 제재를 발표하면서 “해당 조종사가 폭동 혐의를 받는데도 비행 업무에서 제외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중국 민항국은 불법 시위 참여자나 지지자인 직원이 중국행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중국 영공을 지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캐세이퍼시픽은 또 홍콩 경찰 축구팀의 항공 일정을 공유해 중국으로부터 악의적 개인정보 유출이란 지적을 받은 직원 2명을 해고 처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도미닉 라브 영국 신임 외무장관은 지난 9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과 첫 전화 통화를 갖고 폭력 자제를 촉구하면서 평화 시위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영국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라브 장관은 모든 측의 폭력행위를 규탄했다. 그러면서도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에 대해 강조했다”며 “폭력이 다수의 합법적 행동에 그늘을 드리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라브 장관은 신뢰 구축 방안으로 최근 시위에 대해 완전히 독립된 조사를 진행할 것을 캐리 람 장관에게 제안하기도 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일 기자 문답에서 “홍콩은 중국의 특구며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영국은 홍콩에 대해 주권, 통치권, 감독권이 없다”며 “홍콩 문제에 대해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발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