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일본이 대(對) 한국 수출규제를 강화하면서 물품 조달이 어려워진 반도체 핵심 소재 일부의 대체 조달처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 전 간부 출신인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는 11일 일 경제 전문 매체인 ‘닛케이 아시안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가 벨기에에 본부를 둔 한 회사에서 반도체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감광제)를 조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가 구체적인 사명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화학 대기업 JSR과 벨기에의 연구센터 IMEC가 설립한 합작회사로 보인다. JSR의 벨기에 자회사인 JSR마이크로가 이 회사의 대주주인 것으로 알려졌다. 닛케이는 다만 일본 기업이 제3국의 시설을 통해 한국에 규제 품목을 공급하는 일은 일본 정부의 감시를 받을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박 교수는 “삼성은 벨기에 합작회사에서 6~10개월분의 포토레지스트를 구입해 최첨단 반도체칩을 제조하는 공정에서 사용하고 있다”며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의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닛케이는 삼성 측이 벨기에로부터의 소재 조달 여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지만,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처하기 위해 소재 공급처를 다양화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JSR 관련 소식통이 지난 7월 중순 “벨기에에 있는 우리의 조인트 벤처를 통해 삼성전자에 포토레지스트를 공급할 것이다. IMEC와 손을 잡고 포토레지스트를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실리콘 웨이퍼에 회로 패턴을 저장하는 데 사용되는 화학물질로 일본 정부가 지난달 4일부터 대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 중 가장 먼저 수출 허가가 나온 품목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8일 자국 기업에서 개별 수출 허가 신청이 들어온 포토레지스트 한국 수출건에 대해 ‘군사전용 우려가 없다’며 한 달여만에 수출을 승인했다. 통상 수출 심사 기간인 90일보다 두달 가량이나 빠른 허가 발표에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경제산업성은 “요건만 맞으면 규정에 따라 수출 승인을 내주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며 일본의 이번 조치는 수출관리 강화 작업이며 결코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글로벌 공급 사슬을 무너뜨리는 악수(惡手)라는 지적에도 “사실과 다르다”며 적극 항변했다.
하지만 이날 보도로 일본 정부가 삼성전자가 대체 조달처를 확보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조기 허가를 내준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한국 반도체 기업이 주고객인 자국 화학 소재 업체들이 글로벌 공급 사슬 내에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자인한 모양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