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불매운동이 뜨거워지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우선은 불매운동이 개인의 선택을 기반으로 한 소비자 운동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마구잡이식 강요 분위기가 생겼다. 또 지나치게 광범위한 불매운동이 뜻밖의 한국인 피해자를 만들었다. 정부가 나서는 시끄러운 방식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금까지의 불매운동은 일본에 항의하고, 단합된 힘을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대일본 협상력을 높이는, 목표했던 효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부작용은 줄이고 효과는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불매운동의 동력을 유지해나갈 방법은 없을까.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4명으로부터 더 현명하고 전략적으로 불매운동을 하는 방법을 조언 받아 ‘슬기로운 불매운동 생활 5계명’을 정리했다.
① 한국인 피해자는 만들지 말자
전문가들은 불매운동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최근 국내산 재료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일식집에 대한 불매운동이 대표적이다. 피해는 오롯이 한국인 자영업자가 입게 된다. 불매운동은 스시나 돈까스를 먹지 말자는 식의 일본 문화 배척운동이 아니라는 점도 꼭 기억해야 한다. 핵심은 일본 경제에 타격을 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며 “불매운동을 세밀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밀한 불매운동의 일환으로 호사카 교수는 ‘노노재팬’ 사이트를 더 전문화해 일본 음식점에 대해서도 리스트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음식점에 대해서도 노노재팬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며 “업종별로 구분을 하면서 일식집 중에서도 일본에서 식재료를 가져오는 곳이 있는지 알아보고 한국 식재료로 일본 음식을 요리하는 곳은 이름만 일식집이니 문제없다고 분류하는 게 어떻겠나”라고 설명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브랜드 소유권이 일본에 있는 것들을 빼고는 국내 유통업자나 소매업자에 피해가 되는 건 지양해야 한다”며 “무분별하게 불매운동을 하는 건 좋지 않다. 일본에 직접 피해를 주는 걸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에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일본여행을 꼭 가야 한다면 일본에서의 소비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제안이다.
② 불매운동 하지 않는 사람은 비난하지 말자
불매운동이 격화되면서 불매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나 일본여행을 가는 사람에게 ‘매국노’ 딱지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유니클로 단속반’이다. 유니클로 매장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 온라인상에서 공유하는 것이다. 이처럼 폭력적 강요로 변질된 불매운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영애 교수는 “사지 않을 권리도 있지만 살 권리도 있다”며 “유니클로 옷을 사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을 비난할 권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러지 않았으면(일본 브랜드를 사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다른 선택지로 유도해야 한다”며 “누군가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건 본질적으로는 또 다른 폭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소비자의 권리 중에는 선택의 권리가 있다”며 “일본을 가는 사람은 자신의 책임 하에 가는 것인데 남의 선택에 대해 매국노라고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③ 아베가 밉다고 일본인에게 화내지 말자
이번 불매운동은 아베 정부의 부당한 보복조치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시작됐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한국에 관광 온 일본인에게 테러를 가했다거나 하는 걱정스런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트위터 상에서 ‘#좋아요_한국’과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한국에 여행 와서 겪은 미담을 공유하는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서울 중구청에서 시도한 ‘NO재팬’ 깃발 달기처럼 일본인에게 적대적인 움직임이 가시화될 우려는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불매운동의 불똥이 엉뚱하게 일본인 개인에게 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불매운동은 일본 국민이 아니라 아베 정권에 대한 반발이니 국민 대 국민의 갈등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호사카 교수도 “일본 정부가 문제지 일본인들은 문제가 아니니 일본 국민과 정부를 구별하는 성숙한 불매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베 정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을 경우의 역효과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영애 교수는 “일본 전체가 아니라 일부 정치권이 문제가 있는 건데 그런 책임을 일본 국민에게 묻거나 길에서 마주친 일본인에게 퍼붓는 건 지양해야 한다”며 “테러가 벌어지거나 할 경우 오히려 반작용이 강할 거다. 선순환을 이룰 수 있게 방향을 잘 잡아야한다”고 말했다.
④ 불매운동의 본질과 목표를 공부하자
전문가들은 불매운동에도 공부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무조건적이고 감정적인 불매운동은 부작용만 낳을 뿐이라는 것이다. 불매운동이 왜 시작됐고, 어떤 맥락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장단기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바탕으로 불매운동에 참여해야 이성적이고 현명한 소비자 캠페인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은희 교수는 “감정에 매몰될 게 아니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봐야한다”며 “7월 4일 일본의 조치 이후 불매운동이 일어났는데 전후로 일본과 한국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고 불매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했을 때 비로소 합리적인 불매운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세계 경제가 다 연결돼있기 때문에 혐오의 감정을 양국 국민에게 투영시키면 역사를 퇴행시킬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미래에, 후세대에 바람직한 한국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불매운동을 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영애 교수도 감정적으로 불매운동을 하면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테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의를 부탁했다. 그는 “(타인에 대한 비난이나 공격은) 불매운동의 본질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며 이성적이고 전략적인 불매운동을 당부했다.
⑤ 불매운동은 소비자운동…官은 못끼게 하자
불매운동은 정부나 관에서 주도한 것이 아닌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소비자 운동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는 조언도 있었다. 양기호 교수는 “불매운동은 기본적으로 자율적인 거니까 개인의 결정과 시민의식에 기초해서 진행돼야 한다”며 “정치가나 지자체가 조장해서도 안 되고 민의 개인적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중구청의 ‘NO재팬’ 깃발 달기는 이번 불매운동에서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였다. 정부가 민간의 불매운동에 발을 담그려다가 빗발치는 비난에 물러났다. 시민들이 불매운동의 본질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유사한 움직임을 시민들이 제어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영애 교수는 “불매는 경제적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며 “본질을 잊지 않고 나의 소비행위를 절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불매운동이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 단체에 집중돼서는 안 된다”며 “나의 불매가 윤리적 소비의식이라는 것을 올바르게 표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