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승인 EUV 포토레지스트는 삼성전자 신청 물량
일본 정부가 한국을 대상으로 반도체 핵심소재 3종의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지 34일 만에 처음으로 수출을 승인했다. 한국 정부에선 긍정적이라고 평가하지만, ‘간 보기’ ‘불확실성 무기화’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일부 수출을 허용했다는 해석, 한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혀 애로를 겪는 일본 기업 사정을 감안한 실리 챙기기라는 진단도 제기된다.
맞대응 차원에서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배제’ 조치를 발표하려 했던 한국은 관련 계획을 유보했다. 강수로만 맞붙고 있는 한·일 경제전쟁이 새 국면으로 접어든 것 아니냐는 기대와 함께 일본이 추가 수출규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8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1차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했던 반도체 소재 3종 가운데 포토레지스트(반도체 기판에 바르는 감광액) 수출 1건을 승인했다. 경산성은 “신청 내용을 심사한 결과, 군사 전용의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4일부터 포토레지스트 등 3개 품목을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꿨다. 최장 90일 걸리는 개별허가 승인 기간을 감안하면 34일이라는 기간은 비교적 짧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일본이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처음으로 허가했다”고 확인했다. 일본이 승인한 EUV 포토레지스트는 삼성전자가 신청한 물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EUV 포토레지스트는 주로 시스템 반도체 제품 제조에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삼성전자가 이미 기술 개발은 해놨고 신제품 양산단계에 들어간 최첨단 반도체 제품 제조에 들어갈 소재”라고 전했다.
일본의 수출 허가를 두고 다양한 관측이 나온다. 일단 한국 정부는 WTO 제소에 대비한 조치라고 판단하고 있다. ‘수출을 완전히 막는 게 아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한국 정부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는 노림수라는 분석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일본을 WTO에 제소하려면 일본 조치에 따른 구체적 기업 피해사례가 나와야 하는데, 일본이 수출을 허가해 실제 기업 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면 제소하기가 애매해진다”고 말했다.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도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금수(수출을 금지하는 것)가 아니라는 점을 한국 측이 잘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자국 기업 달래기용’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일본 수출 기업들 내부에서도 정부로 인해 하루아침에 한국 거래처로의 수출이 끊기면서 불만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일 경제전쟁에서 새로운 변곡점이 출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은 전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수출무역관리령을 공포하면서 수출규제 품목을 추가하지 않았다. 이번에 수출 허가까지 내주면서 속도조절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도 화이트리스트에서 일본을 배제하는 ‘맞불 카드’를 유보했다. 정부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관계장관 회의 및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전략물자수출입고시 개정 방안을 논의했지만, 구체적 내용을 확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규제라는 ‘기본 틀’이 그대로 유지되는 만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세코 경제산업상은 “잘못된 사례가 나오면 개별 신청 대상 확대를 포함한 추가 대책을 강구하겠다”며 수출규제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일본의 수출 허가는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다른 품목들, 다른 리스트에 대한 불확실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고 경계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