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사과유통공사’, 국내 처음 자진 폐업한 이유?

입력 2019-08-08 10:41
민(民)·관(官) 공동투자로 설립된 ‘청송사과유통공사’는 국내 처음으로 자진 폐업한 지방공기업으로 남게 됐다. 청송군 제공

“주인의식 없는 직원들과 품질 관리를 하지 못한 농민들 때문에 망하게 된 것 입니다.”

민(民)·관(官) 공동투자로 설립된 지방공기업 ‘청송사과유통공사’가 국내 처음으로 자진 폐업하는 오명을 떠안았다.

주주로 참여했던 사과재배농민들은 이 공기업이 설립된 지 10년도 되지 않아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 원인을 “주인의식과 책임감이 없었던 직원들과 상품은 빼돌려 놓고 품질이 떨어지는 사과만 유통공사에 맡긴 재배농민들의 양심불량이 최악의 사태를 몰고 왔다”고 입을 모았다.

경북 청송군은 사과 유통 공기업인 청송사과유통공사가 지난 5일 임시주주총회를 열고 해산을 결정했다고 8일 밝혔다. 지난 2011년 8월 설립된 지 8년 만이다.

주주총회에서는 전체 발행주식 22만1600주 가운데 89.2%인 19만7700주를 가진 주주들이 해산투표에 참여한 결과 찬성 98.4%, 반대 0.9%, 무효 0.7%로 나왔다. 대주주인 청송군 주주권을 빼고도 81%를 넘는 주주가 해산에 찬성해 해산을 의결했다. 반대는 10% 정도에 그쳤다.

부실 경영, 자본 잠식, 경영진 비리 등이 폐업 원인으로 등장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공사 내부와 외부에서 모두 문제가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군이 임명하는 공사 사장과 직원들의 주인의식이 없었던 게 치명적이었다.
이들은 공무원에 준하는 연봉을 받았지만 사명감과 책임감이 없었고 특히 사장은 자신의 임기를 채우기 위해 군의 눈치 보기에만 급급했을 뿐 새로운 판로 개척 등 경쟁력 강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과를 생산해 공사에 맡기는 농민들의 양심불량도 자멸을 재촉하는데 한몫했다.
수확한 사과 가운데 상품은 개인적으로 판매하기 위해 집에 보관하고 가장 품질이 낮은 사과를 주로 유통공사에 맡겨 스스로 품질과 경쟁력 하락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사과재배농민 윤덕희(68)씨는 “농민들이 가장 좋은 사과는 개인 택배용으로 집에 보관하고 2등급은 안동공판장에, 3등급은 능금조합이나 농협에, 4등급은 유통공사에 맡긴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농민들 스스로가 유통공사 경쟁력 약화를 자초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열린 청송사과유통공사 해산결정을 위한 임시 주주총회 모습. 청송군 제공

2014년∼2016년까지 공사를 경영한 사장 등 경영진이 저지른 비리로 공공성과 신뢰도가 추락한 것도 원인이다. 경찰은 2017년 9월 금품을 주고받은 혐의로 사과유통공사 임직원 5명과 전 청송군수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청송사과유통공사는 청송군이 사과 브랜드 가치 향상과 유통체계 개선으로 물류비용을 줄여 농업인 소득을 높이기 위해 2011년 8월 예산 18억원(81.2%)과 민간인 투자 4억1600만원(18.8%)으로 설립했다.

이후 청송농산물 산지유통센터를 위탁 운영한 유통공사는 사과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2014년에는 청송 전체 사과 생산량 4만5515t의 10.1%인 4600t을 처리해 당기 순이익 2억9200만원을 올렸다.

하지만 2016년 4983t, 2017년 4499t, 2018년 3760t으로 사과 처리량이 계속 줄었고 매출도 2016년 145억원, 2017년 136억원, 2018년 109억원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결산 결과 누적 적자가 6억3200만원으로 전체 자본금 22억1600만원의 28.5%에 이르렀다.
게다가 경영비리 등으로 지난해 새 경영진을 구성했지만 이들도 지난 5월 사퇴했고 공사 설립 초기 17명이던 직원도 6명만 남았다.

이런 탓으로 사과유통공사는 행정안전부가 지방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영평가에서 2016년과 2017년 연속 최하위 등급(마)을 받았다.

이에 군은 사업 부진, 농민 신뢰 상실, 자본잠식, 조직 붕괴 등으로 사과유통공사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고 지난 6월 해산절차에 들어갔다.

청송군은 사과산업 재도약을 위해 전문조직이 필요하다고 보고 농산물 산지유통센터 운영체계를 바꿔 공모로 새로운 운영 주체를 선정해 새롭게 출발하기로 했다.

윤경희 청송군수는 “유통공사 법인을 해산해도 건물과 시설은 군 소유여서 그대로 운영해 사과 농가에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새 운영 주체와 군수가 직접 업무를 챙기며 사과 유통량을 더 늘리고 가격 안정을 꾀해 농가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청송=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