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일시위 타깃된 일본 대사관,대사관저…과격행동 자제도 필요

입력 2019-08-07 17:49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반일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주한 일본 대사관과 대사관저가 반일 시위의 타깃이 되고 있다. 일본 대사관은 한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각종 집회·시위에 대비해 경비 강화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7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주한 일본 대사관저 앞에서는 출근 저지 시위가 벌어졌다. 오천도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대표는 오전 5시20분부터 1시간 넘게 정문 인근에 승용차를 세워놓고 두고 “일본에 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 대표는 또 ‘독립군의 피’라며 고추장 푼 물을 비닐봉지에 넣어 대사관쪽 바닥으로 던지기도 했다.

오전 9시쯤엔 시민단체 활빈단이 관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철회’를 상징하는 밀가루와 ‘한국경제에 고춧가루를 뿌리지 말라’는 의미의 고추를 관저 안으로 전달하려 했으나 경찰에 저지당했다.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일본 대사관 앞도 어수선한 분위기인 것은 마찬가지다. 이날 오전에는 1시간동안 청년정당 미래당, 정의기억연대,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흥사단, 민중당, 반아베 반일청년학생공동행동 등이 릴레이 반일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경제보복 규탄’ ‘강제 징용 배상’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회사원 지모(27)씨는 “차로 출퇴근할 때 불편한 점이 있지만 일본의 경제 보복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사관 근처에서 고깃짐을 운영하는 오모(52)씨는 “지난달부터 주변 도로가 자주 통제돼 손님이 줄긴 했다”면서도 “이렇게 무더운 날 밖에 나와 고생하는데 뭐라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근 건물을 청소하는 김모(66)씨는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건물 화장실을 사용하는데 주말이 지나면 난장판이 돼 매주 월요일 출근하는 게 두렵다”며 “취지는 알겠지만 주변 정리를 조금만 신경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한식당 주인은 “매일 북적이고 시끄러운데 장사는 안 된다. 손님이 뚝 끊겼다”고 했다.

일본 대사관은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대사관 관계자는 “대사관 앞 집회·시위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 경비 강화를 부탁한 바 있고 이후 강화됐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의 옛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399차 정기 수요시위’가 진행됐다. 빗방울이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도 주최 측 추산 시민 1000여명이 참석해 자리를 지켰다. 일본은 2015년 7월 기존 부지에 새 대사관 건물을 지으려고 현재 위치로 임시 이전했는데, 이후 공사가 중단됐고 최근에는 종로구청이 신축 허가를 취소했다.

전문가들은 ‘닥치고 반일’식의 움직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아베 신조 정권의 폭주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나는 반일 집회는 좋지만, 일부 과격한 시위는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일본이 오늘 한국에 대한 추가 규제 품목을 발표하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톤다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양국 모두 서로 격화된 감정을 조금씩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지금은 한국 정부도 침착하고 이성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내야할 때”라고 말했다.

박구인 황윤태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