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산업성이 7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시행 시점은 공포일로부터 21일 뒤인 오는 28일이다. 다만 공개된 ‘시행세칙’ 포괄허가취급요령에 기존 수출규제 강화 대상이었던 반도체 핵심소재 3개 품목 외에는 추가로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아 국내 산업계는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당초 일본 정부가 이번 발표를 통해 추가로 규제 강화 품목을 지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던 만큼 그 배경에 관심이 몰린다.
포괄허가취급요령은 화이트리스트 배제 관련 하위 법령으로 1100여개에 이르는 전략물자 품목 가운데 어떤 품목을 수출 절차가 까다로운 개별허가로 돌릴지 결정한다. 따라서 일본 정부의 이날 발표는 국내 기업들의 추가 피해 규모를 가늠할 척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됐다. 하지만 일 경제산업성은 홈페이지에 게재한 포괄허가취급요령에서 한국 수출시 ‘개별허가’만 가능한 수출품목을 추가하지 않았다. 현재로써는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로 직접 타격을 받는 국내 산업 분야가 반도체·디스플레이 부문 외에는 늘어나지 않은 셈이다.
일본 정부는 ‘특별일반포괄허가’도 종전과 마찬가지로 열어둔다고 밝혔다. 특별일반포괄허가란 일본의 전략물자 1120개 중 비민감품목 857개에 한해 일본 기업이 정부의 자율준수프로그램(CP) 인증을 받아 수출관리를 제대로 하고 있다고 인정받을 경우 개별허가를 면제하고 3년 단위의 포괄허가를 내주는 제도다. 일본 정부가 현재 화이트리스트 국가들에 제공하는 것과 비슷한 혜택이다. 중국, 대만 등이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 속하지 않음에도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지 않는 이유도 이 제도 덕택이다.
예상보다 낮은 강도의 시행령에 일본 정부가 국제사회의 여론 악화와 글로벌 공급 체인 내에서 자국 기업들이 겪을 피해를 의식해 숨고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공세 수위를 낮췄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 한국을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겠다는 전체 기조 틀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테일에 해당하는 시행세칙도 일본 경제산업성이 언제든 자의적으로 변경할 수 있어 손쉽게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 지정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일본 정부가 추가 개별허가 품목을 지정하지 않았지만, 한국에 대한 무역공세 수위를 낮췄다고 보기엔 이르다고 진단했다. 개별허가 품목 추가 지정을 ‘꺼내지 않은 무기’로 유지했다는 분석이다. 한국 입장에선 불확실성만 더 커진 것이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이번 시행령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대 품목에 한정하지 않고 우회 수출이나 목적 외 전용 등에 엄정 대처한다”는 표현을 명시했다. 한국 측 대응에 따라 언제든지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로 지정해 수출규제를 강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을 구체화하지 않았지만 수출규제 품목을 추가하거나 수출허가제도 운용상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교역 상대국을 백색국가와 비백색국가로 구분하던 기준을 버리고 A·B·C·D 그룹 체계를 채택해 한국을 B그룹으로 분류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는 ‘경제 보복이 아닌 수출관리 세분화’라는 일본 정부의 기조를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일본 정부의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이번 조치는) 안보의 관점에서 수출관리제도를 적절히 실시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일관계에 영향을 끼치려는 의도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화이트리스트 배제가 보복조치가 아니라는 명분을 쌓아 국제 여론전에서 우위를 선점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형민 기자, 세종=전성필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