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미확보, 거짓말에 속기까지”…경찰, 고유정 수사라인 감찰 의뢰

입력 2019-08-07 15:29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 남편을 살해·유기한 혐의를 받는 ‘제주 전남편 살인사건’의 부실수사 논란과 관련해 경찰 수사 책임자들이 감찰 조사를 받게 됐다. 초동조치의 미흡함과 범행현장 보존 미흡, 압수수색 당시 졸피뎀 미확보 등이 문제로 제기됐다.

경찰청 진상조사팀은 7일 실종 초동조치 및 수사 과정에서 일부 미흡한 점이 있다고 보고 박기남 전 제주동부경찰서장(현 제주지방경찰청 정보화장비담당관)을 비롯해 제주동부서 여청과장과 형사과장 등 수사책임자 3명에 대해 감찰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점검 결과 실종신고 접수 후 초동조치 과정에서 범행 장소인 펜션 현장 확인 및 주변 수색이 지연된 사실이 확인됐다”며 “압수수색 시 졸피뎀 관련 자료를 발견하지 못한 사실 등을 확인해 내린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경찰청은 부실수사 논란이 커지자 지난달 2일 현장점검단을 제주로 보내 제주동부경찰서 형사과와 여성청소년과 등 관련 부서를 상대로 사실관계 확인 작업을 벌이고 문제점을 분석해왔다. 그간 제기된 부실수사 포인트는 실종수사 초동조치 미흡, 범행현장 보존 미흡, 압수수색 당시 졸피뎀 미확보 문제 등이었다.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의 피의자인 고유정이 지난 6월 12일 오전 제주 동부경찰서에서 제주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먼저 진상조사팀은 당시 수사팀이 ‘전 남편이 자신을 성폭행하려 했다’는 고유정의 거짓 진술에 속아 시간을 허비했다고 판단했다. 진사조사팀 관계자는 “최종목격자(고유정)가 하는 거짓말에 휘둘렸다”며 “사실 판단을 신중하게 해야 했고 더 일찍 거짓말이란 걸 캐치해야(알아채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범행 장소인 펜션을 조금 더 일찍 확보하지 못한 점과 현장 보존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점도 감찰 조사 의뢰 대상이 됐다. 당시 경찰은 현장 보존을 하지 않아 증거물이 훼손되고 범행이 이뤄진 펜션 인근의 CCTV 영상을 유가족이 경찰에 먼저 제공한 것으로 드러나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해 진상조사팀 관계자는 “실종수사는 수색을 중심으로 이뤄지지만 범죄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서 CCTV를 확인하는 순서를 정해야 한다”며 “우선순위 판단에 있어서 아쉬운 점이 있어 감찰 조사를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수사팀이 고유정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할 당시 졸피뎀 관련 증거물을 확보하지 못한 경위도 감찰 조사를 받는다. 진상조사팀은 “압수수색 당시 졸피뎀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며 “(압수수색 과정에서) 좀 더 깊이 있는 고민과 수사 지휘가 필요하지 않았나 하는 부분도 감찰 대상”이라고 밝혔다.

지난 6월 1일 오전 10시32분쯤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살인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고유정의 모습. 이 사진은 경찰이 촬영한 영상의 캡처본 [세계일보 제공]

한편 고유정 체포 영상이 언론에 유출된 경위도 감찰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해당 영상은 박 전 서장이 동부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한 차례, 제주청으로 자리를 옮긴 뒤 두 차례 총 3번에 걸쳐 유출됐다. 이에 대해 진상조사팀은 공보 규칙과 인권 규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한다는 계획이다. 피의자 검거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외부에 공개된 절차가 적절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진상조사팀 관계자는 이번 감찰과 관련해 “수사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조금씩 시간이 지체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있어 지휘 책임을 물어 감찰을 의뢰했다”며 “다만 수사의 방향성에서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관계자들은 현장 상황의 어려움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박 전 서장은 “내 불찰”이라며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번 ‘고유정 사건’을 계기로 비슷한 사례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제도개선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경찰청은 고유정 사건과 같은 중요사건이 발생할 경우 초기 위기관리를 위해 종합대응팀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실종사건 발생 시 신속하고 면밀한 소재 확인을 위해 실종수사 매뉴얼도 개선하기로 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