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여행 싸게 갈 기회?…논쟁 벌어진 대한항공 사내 게시판

입력 2019-08-07 07:15 수정 2019-08-07 16:24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로 촉발된 반일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한항공 직원들은 이를 ‘호재’로 누리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이 일고 있다. 공석이 된 일본행 항공권 수백 장을 직원가로 싸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사내는 물론 네티즌 사이에서도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같은 국민으로서 부끄럽다”는 비판 의견과 “애국을 강요하지 말라”는 옹호 의견이 엇갈린다.

시사저널은 대한항공 내부직원의 말을 인용해 일본여행 거부 운동이 시작된 후 일본행 티켓을 구매하는 내부직원이 급증하고 있으며 일부 직원들 사이에선 반일운동을 ‘가족여행 싸게 갈 기회’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고 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는 항공사 직원이면 비행기 공석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제도, 이른바 제드(ZED·Zonal Employee Discount) 티켓 때문이다. 제드 티켓은 항공사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복지성 할인 항공권으로 비행기 출발 시점까지 팔리지 않은 잔여석에 한해 최대 90%가까이 할인한 가격으로 티켓을 예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직원의 부모 및 형제, 자매 등도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신청은 선착순이다. 사전 결제 후 리스팅(대기‧LISTING)하다가 당일 날 최종적으로 자리가 비면 탑승할 수 있다.

지난 1일 대한항공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익명 게시판엔 이 같은 상황을 고발하는 글이 게시됐다. A씨는 “8월14일까지 인천 출발 일본행 제드 리스팅 숫자가 550명이나 된다”며 “‘기회는 이때다’라고 는 직원, 가족분들이 생각보다 많아 놀랍다”고 적었다. “예전 같으면 여름 성수기 때 감히 리스팅조차 못 할 시기가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시기는 좀 그렇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대한항공 현직 부기장도 시사저널에 “제드 리스팅 숫자를 항공편마다 다 세기 힘들지만 일본행 비행기에 대한항공 직원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은 승무원과 파이럿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라며 “본래 여행 성수기에 제드를 이용해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먼저 제드 리스팅에 이름을 올려도 일반 승객들이 몰리면 직원들의 티켓을 자동 취소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기장은 “그런데 최근 (반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일부 직원들이 공석이 생길 것을 확신하고 일본 여행에 나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내부에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직원을 떠나 국민으로서 부끄럽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개인의 사생활을 두고 애국을 강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지난 2일 대한항공 내부 게시판에 한 직원이 “다 놀러 여행가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주재 가족이나 유학 중인 자제를 보기 위해 떠난 사람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또 다른 직원은 “나리타, 오사카 매 비행 제드가 2~30명인데 그들이 다 그런 상황이라는 것이냐”고 반박했다. 일각에선 대한항공 직원들의 행태가 대한항공의 창립 이념인 수송으로 국가에 보은한다는 이른바 ‘수송보국’ 정신에 위배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반대 의견을 낸 네티즌들은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 사건까지 연결 지으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국민들이 취소한 티켓을 기회로 노리고 여행을 떠난다니 황당하다” “총수 일가에게 직원들이 당할 때 분노해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까지 들었는데…”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을 한진항공으로 바꿔라”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반면 이를 옹호한 네티즌들은 “반일운동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 지부터 생각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 “불매와 반일 강요하지 않는다더니 불매 동참 안 하면 무조건 매국인거냐” 등으로 반박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현재 일본행 제드 리스팅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며 “집계해 볼 수 있겠지만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직원이 500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믿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해당 글도 이미 지워진 상황이라 입장을 표명할 만한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