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와 관련해 중소기업들이 당장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적으로는 피해가 예상되기 때문에 생산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자금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부가 나서서 수출입을 통제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이 탄소섬유, 보톡스 등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6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비엠금속, 에스다이아몬드공업(주) 등 소재·부품·장비 분야에 높은 기술을 가진 8개 중소기업 대표와 간담회를 갖고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중기부는 자금 지원에 대한 중소기업의 요청이 많은 것으로 파악하고 추가경정예산을 적극 활용해 경영안정자금 1조500억원을 신속하게 집행하기로 했다.
중기부가 설치한 일본 수출규제 애로신고센터에는 11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7건의 간접적인 피해가 집계됐다. 일본이 그동안은 요구하지 않던 서류를 요구하는 등의 어려움인 것으로 확인됐다. 직접적인 피해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비공개로 진행된 간담회에서 중소기업 대표들은 기술력을 높이기 위해 연구개발(R&D)에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위치결정 좌표로봇 제조업체인 ‘재원’의 신정욱 대표는 “좋은 연구 인력을 뽑아야 하는데 인건비가 부담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꾸준히 노력해서 로봇 부품 소재 분야에서는 국산화가 상당 부분 이뤄졌다고도 설명했다.
박 장관은 이와 관련해 “‘대기업이 생각하기에 국산화하기 좋은 부품 리스트를 달라’고 대기업에 요청해 왔다”며 “이 목록을 받아서 생산 가능한 중소기업을 조사하고, 정부가 연구개발을 지원하면 국산화에 대한 신뢰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간담회에 참여한 한 중소기업 대표는 “(부품의) 일본 의존도는 절반 정도다. 품질과 가격이 좋아서 일본 부품을 썼다”며 “일본 부품을 쓰지 않는다면 제품 가격이 1.5~2배 정도 늘어나 경쟁력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중소기업들은 어려운 상황이 예상되지만 정부가 수출입을 통제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우리 정부가 일본처럼 통제하면 우리 기업에도 피해가 올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이에 대해 “중기부는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펼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일본의 수출규제 대상이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전략물자관리원은 이날 일본산 탄소섬유와 보톡스 등도 수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놨다. 탄소섬유는 반도체, 자동차 뿐 아니라 미사일 동체에 쓰이는 화학재료이기 때문에 수출규제 품목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다. 보톡스라고 불리는 보툴리눔 독소 생산 균주 등 박테리아 22종도 무기로 전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본 정부가 ICP(Internal Compliance Program) 인증 기업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전략물자 관리에 자율능력이 있다고 인정한 기업에 ICP 인증을 부여하고 있다. ICP기업은 화이트리스트에 해당되지 않는 나라에 수출하더라도 수출·수입 절차를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 ICP기업을 활용하면 화이트리스트 제외의 영향을 비켜갈 수 있기 때문에 전략물자관리원도 “ICP기업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이날 간담회에서도 ICP 활용 방안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박 장관은 “일본 정부가 인증한 ICP 기업을 통해 수입할 경우 화이트리스트 배제 전과 비슷하게 큰 불편 없이 수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장관은 “중기부가 준비하고 있는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를 통해 유망 중소벤처기업을 발굴하도록 정부가 적극 도울 것”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업적 협력 속에서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을 이루도록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