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74주기를 맞아 한·일 시민단체가 일본 정부를 향해 전쟁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촉구했다. 일본의 잇따른 경제보복으로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미·일 제국주의 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반대하는 아시아공동행동’(AWC) 한국위원회와 AWC 일본연락회의 등 10개 단체는 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히로시마에 핵폭탄이 투하된 지 74년이나 흘렀음에도 인류는 여전히 핵을 놓지 못하고 있다”며 “더 늦기 전에 전 지구적 핵발전과 핵무기 철폐 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을 향해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 8년이 지났지만 지속해서 방사능이 누출돼 일본 전역이 오염되고 있는데도 이 와중에 중단됐던 핵발전소를 속속 재가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아베 정권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 경제보복을 감행하면서 한·일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동북아시아 질서 재편을 노리고 있다”며 “일본 정부는 전쟁 피해자에게 사죄, 보상하라”고 요구했다.
일본에서 이날 열린 ‘8·6 히로시마 푸른하늘식전’ 행사의 실행위원이자 피폭 2세회 대표인 데라나카 마사키씨는 현지에서 보낸 메시지를 통해 “원폭 피폭자 중 한반도 출신자가 히로시마에 5만명, 나가사키에 2만명 등 합해서 7만명이나 있었다는 사실을 일본인은 잊어선 안 된다”며 “시민들이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함께 미래를 창출하자”고 전했다.
원폭 피해자가 상당수 모여 사는 경북 합천에서도 한국인 희생자 추도식이 거행됐다.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위령각에서 열린 행사엔 처음으로 국무총리 명의 조화가 설치됐고 현직 장관이 참석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도발해 아시아는 물론 세계 평화를 위협했다”며 “원자폭탄이 사용되고 나서야 전쟁이 종료됐지만 많은 희생자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2017년 5월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특별법이 시행돼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와 추모사업 등이 가능해졌다”며 “지금까지 정부 정책이 원폭 피해자 1세대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젠 피해자 후손이 겪는 어려움 실태도 파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기자들에게 “추도식은 처음이지만 2년 전에 복지회관을 방문하는 등 원폭 피해자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져왔다”며 “오늘은 정부가 좀 더 공식적으로 피해자를 도와야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추도식에 직접 참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시민단체 ‘한국원폭피해자를 돕는 시민모임’의 이치바 준코 회장은 “일본 정부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 배상 문제가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해결했다고 주장해왔지만 한국인 희생자와 유족께 사죄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정부는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는 것 같다”며 “(우리 단체는) 앞으로도 한국인 원폭 피해자 배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됐다는 일본 정부의 헛소리를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1945년 일본 원폭 투하로 인한 한국인 피폭자는 7만~10만명으로 이 중 4만~5만명이 피폭으로 사망했다. 현재 생존 피해자는 2210명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를 한 복지부는 올해 피해자 1세대뿐 아니라 2세대인 자녀에 대해서도 건강상태와 의료이용 실태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