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총기규제’ 촉구에도 오히려 역풍 이유는?

입력 2019-08-06 16:56 수정 2019-08-06 17: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지난 주말 텍사스주와 오하이오주에서 발생한 총기난사와 관련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총기규제에 소극적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총기규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지난 주말 텍사스주와 오하이오주에서 연이어 발생한 대규모 총기참사로 ‘트럼프 책임론’이 나오면서다. 하지만 총기참사를 정신질환자의 일탈이나 언론·소셜미디어 등의 탓으로 돌린 데다, 그간 자신의 인종차별적 발언 및 ‘편가르기’에 대해서는 회피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며 “모든 미국인들은 한목소리로 인종주의와 편견, 백인우월주의를 비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뉴욕타임스(NYT), CNN방송 등이 보도했다. 그는 “이런 악의 이념은 반드시 물리쳐야 한다”며 “미국에 증오가 발붙일 곳은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3일 미국 텍사스주 국경도시 엘패소의 대형 쇼핑몰 월마트에서는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20명이 숨지고 26명이 다쳤다. 이후 부상자 2명이 더 사망했다. 불과 13시간 뒤 오하이오주 데이턴 시내에서는 총격범을 포함해 10명이 사망했다. 특히 텍사스 총기참사는 히스패닉을 겨냥한 증오범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온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책임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참사 대책으로는 ‘적기법’(red flag laws) 통과를 촉구했다. 위험인물의 총기류 소지를 선별적으로 규제하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공 안전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것으로 판단되는 이들이 총기에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오범죄자 및 총기난사에 대해서는 사형집행 시 우선순위에 두도록 법무부에 새로운 법안을 추진토록 지시했다고도 했다.

총기규제의 필요성을 촉구했지만 오히려 거센 비판이 잇따랐다. 특히 “방아쇠를 당기게 한 건 총기가 아니라 정신질환과 증오”라는 발언이 도마에 오르면서 총기규제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강력한 신원조회가 이날 (트럼프 대통령) 메시지의 핵심은 아니었다”며 “미국총기협회(NRA)와 싸우기를 분명히 주저한다”고 지적했다. 각종 로비로 총기규제를 막아온 NRA는 성명 이후 “총기 폭력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총기참사의 원인이 정신질환자의 일탈이라는 주장에 동조한 것이다.

민주당 소속 코리 부커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대통령은 잘못됐다”며 “백인 우월주의는 정신질환이 아니며 총기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그들의 증오를 실행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도 “진실을 피하기 위한 대통령의 꼼수”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종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정작 본인의 인종차별 발언에 대해서는 눈감았다는 비판도 있다. 세스 물턴(매사추세츠) 하원의원은 트위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 난사와 관련해 공화당과 자신의 인종차별주의적 레토릭(수사)는 탓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정작 본인이 분열적 정치를 하는 데 그 플랫폼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총기난사 참극을 반이민 정책의 도구로 사용하려 했다는 점도 지탄 대상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트위터에 총기 구매자 신원조회 법안과 이민개혁 법안을 연계하자고 제안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난사 사건을 이민정책에 대한 의회의 양보를 얻어낼 기회로 여겼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트위터에 “이민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백인 우월주의, 총기 안전 입법에 대한 미국의 무대책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총기사고 대책을 위해 초당적 협력을 주문하면서, 미 의회가 총기규제법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설지 주목된다. 미 의회는 여름 휴회를 접고 개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 등이 보도했다.

특히 총기규제에 소극적이던 공화당도 이전의 미온적 태도에서 진전된 모습을 보였다.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각자의 관할권 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문한 부분을 반영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과 매코널 원내대표가 수차례 대규모 총기참사에도 총기규제에 반대해왔다며 관련법 통과가 어렵다는 시각이 있다고 전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