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일 발표한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의 핵심은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채널 구축이다. 정부는 수십년간 소재·부품 국산화 사업들이 한계를 드러낸 근본 원인이 수요·공급기업 간 협력 부족, 개발과 생산 단절에 따른 벨류체인 형성 실패로 판단한다(국민일보 7월 23일 1·4면 보도).
이에 정부가 직접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참여할 수 있는 4가지 협력모델을 제시하고 연구·개발(R&D) 지원, 세제지원 등 각종 유인책을 꺼내들었다. 다만 일부에선 정부 대책이 소재·부품·장비 분야 중소기업의 실질적 애로를 해소하기에 모자란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수요·공급기업 간 수직적 협력, 수요기업 간 수평적 협력에 바탕을 두는 4가지 협력모델을 선보였다. 주로 수요기업은 대기업, 공급기업은 중소기업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조치는 대·중소기업 상생 성격이 강하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이번 대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분업적 협력모델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었다”며 “소재·부품·장비 경쟁력위원회 산하에 대·중소기업 상생협의회를 설치해 상생 품목을 개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선, 정부는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협동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할 경우 국가기술은행에 확보된 기술정보를 공유하거나, 대기업 보유기술 중 무상이전이 가능한 기술을 최대한 지원키로 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기업 보유기술 가운데 무상이전이 가능한 기술은 6654건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이를 1만건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는 기술을 무상이전하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우수조달제품 지정 등 공공구매에서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키로 했다.
수요기업과 공급기업이 국내에 생산시설 확충, 공동 시설투자 등으로 공급망을 연계하는 모델에는 시설투자 및 양산평가 비용을 지원한다. 특히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 대기업 협력사의 시설투자에 각각 5000억원, 1000억원까지 대출을 지원한다. 산업은행 등이 운영하는 산업구조 고도화 지원프로그램 등 정책자금도 투입한다. 이들 기업이 공동으로 산업단지 조성에 나서면 수도권 지역의 산업단지 부지를 우선 배정한다. 기업들이 투자한 부설연구소에 대한 지방세 감면 혜택도 2022년까지 연장하고, 원천기술과 신성장동력 분야는 추가 10% 포인트 감면 혜택을 준다.
수요기업 간 협력모델에도 다양한 지원카드를 적용한다. 수요기업끼리 협력사를 공유하거나 공동 R&D를 하는 경우 공동 R&D 출자금액에서 일정 비율에 법인세 세액공제 혜택(2022년까지 한시적)을 준다. 해당 R&D가 산업경쟁력 강화에 긴요하고 파급효과가 크다면 공정거래법상 공동행위(담합)로 보지 않기로 했다. 수요기업이 공동 투자하거나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공급기업에 임대 전용 산업단지 우선 입주도 지원한다.
이밖에 수요기업끼리 해외 공급처를 발굴하고 공동구매, 공동 재고확보에 나서는 협력모델에도 지원사격을 한다.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대사관 등을 활용해 대체 수입국·공급망 발굴을 돕는다.
산업계에서는 다양한 협력모델을 바탕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간의 상생 생태계가 작동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동안 중소기업이 절박하게 외칠 때 외면하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현실화된 뒤에야 이런 대책을 내놓으면 뭐하느냐”는 푸념도 나온다. 대기업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도 정부가 떠안은 숙제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