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편지라고 하죠. ‘○○병장이 저를 괴롭혔습니다’라고 고발한 편지를 가해자 본인한테 보내요.”
군대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고발 이후 부대 측으로부터 보호조치를 전혀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양대 상담심리대학원 서동광씨는 석사학위 논문 ‘군대 내 성폭력 피해 병사들의 경험에 관한 질적 연구’를 통해 군 전역 후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성폭력 피해 남성(23∼29세) 10명의 경험을 분석했다.
논문에는 군 내에서 성폭력을 경험한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있다. 피해자 10명 모두 선임 및 군 간부를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했다. 그중 9명은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상부에 보고조차 하지 못했다. 고발해봤자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자신의 피해사실만 부대 전체에 퍼져 군 생활이 어려워질 것 같다는 두려움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현재 군에서 실시되고 있는 익명 고발제도 ‘마음의 편지’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고발용 전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해자 A씨는 “고발용 전화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화 고발을 하고 나면 남은 군 생활이 꼬여 ‘병풍’처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고발 사실이 성폭력 가해자에게 그대로 전달되거나 고발 이후 그 사실이 퍼져 선임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예도 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피해자 B씨는 “상담을 신청하는 군인들은 본인의 상담 사실을 다른 부대원들에게 들킬까 봐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또 문제가 커지는 것이 두려워 성폭력 사실을 숨기고 쉬쉬하는 군 문화를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경직된 군 위계질서 울타리 안에서 선임 및 간부의 성폭력을 고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용기 내 성폭력을 고발해도 부대에서는 피해자 보호에 소홀했다는 게 피해자들의 일치된 증언이었다. 이 때문에 신고 후 2차 보복성 공격에 대한 두려움이 큰 것으로 조사됐다. 증언에 참여한 10명 중 유일하게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한 C씨는 “고발 이후에도 해당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근무했다. 보호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전역 후에도 트라우마처럼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또 가만히 있을 때 눈물이 나기도 하며 잠이 안 오기도 한다”며 괴로워했다.
연구자 서씨는 “군대 내 성폭력은 지위, 계급 등 권력 위계에 의존한 가학행위에 가깝다”며 “장난이나 친밀감으로 미화하는 가해자 중심 논리는 군에 있는 위계의 엄격함 속에 더욱 뿌리 깊게 박혀있다”라고 분석했다.
서씨는 피해자 10명 중 절반 이상이 생활관에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진술한 만큼 군 내 성폭력 발생 시 주변에 있었거나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주변인들이 피해자 대신 신고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황선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