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포치’(破七)는 미국 탓”…환율전쟁 막 오르나

입력 2019-08-05 15:56

중국 정부는 위안화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달러당 7위안을 넘는 ‘포치’(破七)가 현실화하자 미국에 책임을 돌렸다. 미국의 대중 관세부과 조치 등 무역전쟁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포치’가 불가피했고, 이를 용인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위안화 가치 하락은 수출 기업의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지만, 해외 자본 이탈과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의 빌미가 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포치를 용인하자 환율전쟁의 서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인민은행은 5일 책임자 명의 성명에서 “일방주의와 보호 무역주의 조치 및 (미국의) 대중 관세 추가 부과 예상 등의 영향으로 오늘 달러 대비 위안화 환율이 7을 넘어섰다”며 “이는 시장의 수급과 국제 환율 시장의 파동을 반영한 결과”라고 밝혔다.

인민은행은 “과거 20년 위안화 환율의 변화를 보면 환율이 달러당 8위안을 넘던 때도 있었다”며 “7이라는 숫자가 무슨 방파제 같은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7이라는 숫자는 댐의 수위와 비슷하다”며 “물이 많은 시기에는 조금 더 높아지고, 갈수기에는 낮아지기도 하는 게 정상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민은행은 다만 “우리는 위안화 환율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안정되게 유지할 경험과 자신감,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포치가 현실화된 것은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중국의 경기 하방 압력이 커진데다,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효과를 상쇄시키기 위해 중국 당국이 환율을 적극 방어하지 않고 ‘방관’키로 한 탓으로 풀이된다. 위안화 가치가 하락하면 미국이 중국산 수출품에 부과하는 관세 부담을 어느 정도 흡수할 수 있어 수출 기업들에게는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위안화 환율 급락시 우려되는 자본 유출 등의 부작용 때문에 중국 당국은 포치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환율방어에 주력해왔다.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중이던 2008년 5월이 마지막이었다.

중국 당국은 최근 미·중 무역전쟁을 이유로 들며 ‘포치’ 방어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여러차례 밝혀왔다.
이강 인민은행장은 지난 6월초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위안화 환율 방어 ‘레드 라인’(red line)이 있느냐는 질문에 “최근 (위안화가) 약간 약해지고 있는데 이는 미국의 큰 압력 때문”이라며 “특정 수치가 중요한 것만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위안화 환율의 유연성은 중국 경제와 세계 경제에 좋은 일이고, 경제에 자동적인 균형추 기능을 제공한다”고 말해 ‘포치’ 용인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날 인민은행이 ‘책임자’ 명의 성명에서 포치를 미국 탓으로 돌린 것과 비슷한 취지다. ‘포치’는 미·중 무역전쟁을 주도한 미국 측에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미리 명분쌓기를 해온 셈이다.

인민은행은 이날 오전 위안화 거래의 기준이 되는 중간 환율을 올들어 처음으로 6.9위안 이상으로 고시해 ‘포치’에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위안화 절하는 중국에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면 해외 자본이 환차손 등을 우려해 중국에서 빠져나가고 이는 다시 ‘위안화 가치 하락-추가 자본 이탈’이란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또 위안화 가치 하락은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경제 불안요인이 된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도 신경쓰인다.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미국 정부 조달시장 진출이 제한되는 등의 제재를 당해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따라서 중국이 포치를 용인하는 것은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미국의 보복도 불사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환율전쟁의 서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중국과 유럽이 미국과 경쟁하려고 대규모 환율 조작 게임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중국은 위안화 절하로 엄청난 이익을 취하고 있다”며 “중국 중앙은행의 총재는 시진핑 국가주석이다. 시 주석은 그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