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은 목사
서울 마라나타교회
본문 : 민 20:2~13
사건의 발단은 모세가 여호와의 명을 받고 이스라엘 공동체를 이끌어 신광야를 지나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 그곳에 물이 없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가데스는 바란광야와 신광야 사이에 위치한 사막지대인데 이곳은 물이 나오는 곳입니다.
신광야를 지나면서 물이 모자라 목이 말랐지만 가데스에 가면 물이 나오니 조금만 참자는 생각으로 기대하면서 가데스까지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데스에 도착했는데 물이 없습니다. 여기서 물을 얻지 못하면 어디서 물을 얻어서 광야를 지나야 하는가, 길이 없습니다. 절망입니다.
탈수로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쓰러지니 곧 죽을 위기 앞에 있습니다. 절망은 원망이 되어 성난 군중은 리더인 모세에게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모세와 다투려고 모여듭니다.
내용은 ‘왜 애굽에서 잘사는 우리를 광야로 네가 끌고 와서 우리를 죽게 만드느냐’ 는 것입니다. 군중은 모세가 가진 비전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보이느냐 아니냐….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사는 가치기준이 다릅니다.
비전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거창한 것 보다는 오늘 하루 여기서 잘 먹고 잘사는 게 더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오늘 하루 잘 먹고 잘 살면 됩니다.
그렇게 살다가 천국 가는 것이지요, 예수님 믿고 교회를 다니면서 나름 열심히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서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되면 절망입니다. 성도들은 어디 가서 얻어야 합니까?
그때 목회는 위기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비전을 받고 사명감을 가지고 목회를 시작했지만 목회가 길을 잃으면 성도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비전이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이끌고 자기가 받은 비전을 이루어 가는 게 리더십입니다. 그런데 성난 군중에게 끌려가서 받은 비전을 놓치면 다 같이 죽는 길입니다.
먹고살 게 없어서 성난 군중… 그들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배고파 굶주리고 목마른 군중과는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맹수 앞에 서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는 죽을 수도 있는 위기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전까지는 말이 통하지 않는데 무슨 대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기도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회중을 상대하지 않고 그들에게서 나와서 회막 앞에 가서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민20:6) 그 기도에 응답해서 하나님이 오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공동체를 모으고 그 앞에서 바위도 순종해서 물이 나오는 우물로 변하는 거룩한 하나님을 보여주라는 것이었습니다.(민20:8) 그러면 물을 얻을 것입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거룩함을 보이면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아봅니다.(겔 36:23)
군중들이 바위도 순종하여 물을 내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볼 것입니다. 모세는 목마른 군중에게 먼저 이 하나님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모세는 기도 응답대로 지팡이를 가지고 군중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내면에서 어떤 심리적인 변화가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엉뚱한 말이 나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민 20:10)” 반석은 여호와의 뜻을 알아 듣고 그분께 순종해서 물을 내었지만, 위기 앞에서 모세는 군중이 원하는 물을 주는 것이 먼저 였습니다.
반석이 순종해서 물을 내는 여호와는 빠져있습니다. “우리가 너희가 원하는 물을 나오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은 그것이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말씀하십니다.(민 20:12)
인간의 한계입니다.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 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민 20:12)” 이 사건은 리더인 모세에게 아주 큰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물을 못 마셔서 죽을 것 같아도 물이 먼저가 아니라 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아는 게 더 중요합니다. 물을 주시는 하나님은 반석을 순종하게 하셔서 물을 내게 하시는 오직 한분뿐인 거룩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을 얻으면 물은 따라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