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韓군함이 日군함에 사격할지도 모르는 상황 우려해야”…美서 고조되는 위기론

입력 2019-08-05 14:52 수정 2019-08-05 15:41
한·일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미국은 중재에 나설 의사 없거나 중재를 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한·일 갈등이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들고 있으며 외부의 도움 없이는 양국의 체면을 세우는 타협을 이끌어내는 것이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중재에 나서기를 꺼리고 있으며 한·일 모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도움을 원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NYT는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4일(현지시간)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반일 시위를 자세히 전했다. 사진은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규탄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한·일 군사협정파기’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NYT는 전문가의 발언을 인용해 미국은 한국 군함이 일본 군함을 향해 사격을 가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해 우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역분쟁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동맹국 간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미국 내에서 고조되는 것이다.

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은 “과거 한·일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을 때 미국 정부는 때로는 비공개적으로 한·일 갈등이 미국의 안보 이익에 해를 끼친다는 시그널을 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이코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한·일 중재 메시지를 보냈지만 너무 늦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면서 “그는 한·일이 아시아에서 한 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팔짱을 낀 듯한 미국의 스탠스는 동북아 지역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던 미국의 리더십을 약화시켰다고 NYT는 지적했다.

한·일 양국의 민심도 갈등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NYT는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반일 시위를 전하면서 한국은 일본을 넘어야 할 라이벌로 여겼으며 올림픽 금메달 수와 노벨상 수상자 수를 비롯해 모든 것을 비교했다고 전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한·일 모두에서 상대국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로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던캘리포니아대학의 데이비드 강 한국학연구소장은 “한·일이 서로에게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제 정신이 아니다(insane)”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일은 이 문제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갈등은 최근 국제사회에 일고 있는 민족주의 바람과도 연관이 있다. 수전 손턴 전 국무부 차관보 대행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어젠다에 더 집착하고 국제사회를 위해선 아무 것도 희생하기를 꺼리는 시대가 왔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히 미국에서 이런 경향이 심하다”면서 “불행히도 이것은 전염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미국을 가장 불안하게 여기는 것은 한·일 갈등이 무역 문제에서 군사·안보 문제로 전이되는 상황이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은 한국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파기를 검토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스탠퍼드대학에서 동아시아학을 가르치는 대니얼 스나이더는 한·일 군사충돌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스나이더는 “미국민들은 미국의 배와 비행기가 한·일 사이의 바다와 하늘 사이로 다니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고 “미국은 한국의 군함이 일본의 군함에 사격을 가할지도 모르는 상황을 우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니 글레이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한국이 지소미아를 파기할 경우 한반도에서 양국 공조 강화를 추진했던 미국에게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군사적으로 보다 공격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미국의 중재 등 상황 변화가 없을 경우 한·일 갈등이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고 NYT는 지적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