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분석한 아베의 의도는?…‘한국 경제 불확실성 증폭’

입력 2019-08-05 13:30 수정 2019-08-05 15:25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오는 8일쯤 국내 5대 그룹(삼성·현대차·LG·SK·롯데) 부회장과 만나 일본의 수출 보복 관련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다. 청와대는 지난달 4일 3대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본격화한 이후 5대 그룹과 수시로 접촉하며 애로사항을 청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5대 그룹 총수들이 조만간 만날 가능성도 나오지만 청와대는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과 관련해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보고 있다. 직접적인 수출 규제의 효과보다 기업과 국민의 불안함이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향후 과도한 불안을 조장하는 이른바 ‘가짜뉴스’ 단속과 대응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김 실장은 5일 춘추관을 찾아 “8일로 정확히 정해지진 않았지만 곧 5대 그룹 부회장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이미 지난 6월 30일 한 일본 언론에서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를 보도하자 바로 5대그룹 부회장에게 연락을 취했고, 지난 한 달간 계속해서 기업과 접촉해왔다고 한다. 김 실장은 “지난달부터 5대 그룹 부회장과 개별적으로, 또는 한꺼번에 만났다”며 “이게 정책실장의 일이다. 일본 사태와 관련해 주요 기업과 상시적인 소통채널을 유지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일본이 두 차례에 걸쳐 한국에 수출 보복을 가한 것을 두고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파악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지난달 4일 1차 수출 규제 정책을 취한 이후 2~4주 내에 3개 품목(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의 재고량이 소진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현실화 되진 않았다.

청와대 정책실은 지난 한달 간 해당 품목을 모니터링 한 결과 한국 기업이 재고 부족으로 단기간에 생산을 중단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자국 기업의 피해를 예상하고도 수출 규제를 본격화한 것은 이런 단기적인 효과를 노린 게 아니고 장기적인 한국 경제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려는 목적 때문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그 근거로 지난 2일 골드만삭스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들었다. 권구훈 북방경제협력위원장과 일본, 미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작성한 보고서는 일본의 수출 규제 의도를 두고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 증폭’을 명시했다.

권구훈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이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했다고 해서 약 1200개의 품목에 바로 수출 규제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수출 규제 품목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진다. 하나는 일본 경제산업성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하는 1120개의 전략물자가 있다. 이를 제외한 품목은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지만 경산성이 필요한 경우 조치를 취할 수 있다(Catch all·캐치올 품목). 해당 사안은 우리법에도 비슷한 규정이 있다. 두 가지 항목에 해당되지 않는 모피와 목재, 식량 등의 품목은 어떤 규정에도 제한없이 수출 가능하다.

정부는 일본의 규제가 3가지 불확실성을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지난달 4일 1차 규제를 통해 반도체 3개 품목을 제한했지만 1120개 품목 전체에 대한 수출 규제를 본격화한 상태는 아니다. 화이트리스트 국가는 일본에 수출을 할 경우 포괄적 허가제를 적용받아 서류 심사 등에서 혜택을 봤다. 다만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더라도 매번 수출 때마다 개별적으로 심사를 받는 개별허가제로 바로 전환되는 건 아니다. 결국 1120개 품목이 언제 개별허가로 전환될 것인지가 중요하다. 일본이 1000개가 넘는 품목을 모두 개별허가제로 전환한다면 진짜 한·일 경제 전쟁이 시작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캐치올 조항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이 입맛대로 필요에 의해 언제든 수출 규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기업 가운데 일본이 블랙리스트에 올린 기업은 없지만, 정부가 자의적으로 판단해 수출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일본은 행정 여력 상 해당 규제를 기업에게 맡기는 CP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정부는 1300개 CP 기업의 명단을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기 위한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200개에 달하는 규제 예상 품목 대부분은 1300개 기업의 수출·입 항목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피해가 예상되는 주요 품목 뿐 아니라 기업에 대해서도 물밑에서 지원책을 강구하고 있다. 정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현장 기업의 ‘잠재적 능력’이다. 정부는 이미 산업통상자원부를 중심으로 규제 품목을 수입하는 업체를 직접 관리하는 시스템을 가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이 기업 하나하나 수출과 수입상황을 체크하고 있고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중심이 되어 신고센터를 만들어 기업과 일대일 컨설팅을 진행 중이다. 또 부품소재 국산화를 위해 소재부품특별법을 소재부품장비상시법으로 만드는 계획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소재부품 산업 뿐 아니라 금융시장을 포함한 경제 전반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아울러 가짜뉴스가 일본발 불확실성을 더 키운다고 보고 강력대응에 들어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 경제 보복관련 가짜뉴스를 막는 것이 상황반의 첫번째 업무”라며 “각 부처 장관과 차관이 직접 나서서 대응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일본과 달리 한국의 경우 언론을 포함한 각 채널에서 확인이 안된 가짜뉴스가 쏟아지고 있고, 이것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노리는 바라고 보고 있다.

다만 청와대는 첨단 소재, 부품 경쟁력 강화화 관련해 여당일각에서 제기되는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 등에 대해서는 “여당에서 나오는 개인 의견일 뿐 결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