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모(37)씨는 지난달 충북 영동에서 서울로 향하는 경부고속도로에서 끼어들기하던 차량을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차량 문이 열리지 않는 다급한 상황에 처한 이씨는 곧바로 보험사에 연락했지만 보험사의 견인차(일명 ‘레커차’)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한 건 한 사설업체의 레커차였다.
견인기사는 “차량 정체와 2차 사고가 우려되니 일단 차부터 옮기자”고 이씨를 채근했다. 이씨는 이를 수락했고 이씨의 차량은 사고지점에서 갓길까지 10m가량 옮겨졌다. 이후 이씨가 업체로부터 받은 청구서에는 48만원이 찍혀 있었다. 견인장비 사용료가 추가된 것이다. 이씨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비용을 지불했다.
이씨처럼 사고로 경황이 없는 사이 사설 레커차를 이용했다가 바가지 요금을 뒤집어쓰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자동차 견인 관련 소비자 상담은 매년 400건 넘게 꾸준히 접수된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4일 “최근 4년간 견인 관련 상담이 총 1939건 접수됐는데, 이중 견인료 과다 청구 등 요금 관련 사안이 70% 이상”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름 휴가철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이 많을 때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경찰 등에 따르면 사설 견인 업체들은 사고 차량을 선점하기 위해 경찰과 소방서 무전에 대한 불법 감청도 서슴지 않고 있다. 지난달 울산지법은 울산소방본부 상황실의 무전 통신을 3년간 불법 감청한 견인차 운전자 3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사고 다발지역에 대기하거나 지역별로 현장 사무실을 차려놓고 폐쇄회로(CC)TV를 모니터링하는 건 기본이라고 한다.
대다수 견인업체들은 국토교통부의 ‘구난형 특수자동차 운임·요금표’에 명시된 항목별 상한액을 넘지 않는 선에서 요금을 부과한다. 2.5t 미만 차량 기준 10㎞ 이내 견인 시 5만1600원, 이후 견인 거리가 늘 때마다 추가금이 붙는 식이다. 휴일 및 공휴일, 야간에는 30%의 요금이 할증 적용된다.
문제는 일부 업체들이 운임·요금표상 ‘명시되지 않은 사항은 법령에 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당사자 간 협의 또는 관습에 따른다’는 조항을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견인차에 부착된 크레인 외에 돌리(구난장비) 등 추가 장비를 이용했다며 비용을 청구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사고로 경황이 없는 틈을 타 차주 동의 없이 차량을 무단으로 이동해놓고 터무니 없는 구난비를 요구하며 지불하지 않을 경우 차를 내주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업체들의 횡포를 막아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국토부도 이런 허점을 인식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운임·요금표에 없는 기타비용 항목에서 추가금이 발생하는 사례가 많고, 관련 민원이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타비용을 요금 신고제에 포함하고 관련 규정을 손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업계 종사자와 전문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사설 견인업체와 차주의 부당 요금 관련 분쟁은 개인 사업자의 영업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돼 대부분 민사 소송으로 해결해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발생 시 사설 견인업체가 견인을 유도하더라도 보험사나 한국도로공사의 견인 서비스를 이용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